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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불상·범종에 담은 간절한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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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고려시대 ‘금동관음사유상’(앞)과 현대 작가 이우환의 작품을 아우른 설치는 ‘내 안의 부처’라는 전시 주
제를 응축하고 있다. 옛 것과 새 것의 만남 속에 선(禪)·공(空)과 같은 불교의 세계를 구현했다. [정재숙 기자]
관음보살좌상, 목조에 금칠, 13세기. 머리와 몸체에서 복장물이 다수 나왔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바라는 소원이 절실하고 구하는 마음이 지극해서일까. 불상(佛像)은 화려하고 정교하며, 그 안에 넣은 복장(腹藏) 유물은 당대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사찰을 일구는 구석구석에 물심양면으로 쌓은 후원자들의 공덕(功德)이 수백 년이 흐른 오늘 보아도 불심(佛心)을 돋운다.

 서울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에서 23일 막을 올린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을 담다’는 통일신라시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불사(佛事)에 참여했던 이 땅의 불자들이 누구였는지를 좇는 특별전이다. 통일신라시대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구부터 조선시대 ‘감로도’까지 126건 431점을 펼쳐놓고 언제 어떤 사람들이 무슨 목적으로 불교미술을 후원했는지 분석했다. 그들이 쓴 발원문과 바친 유물을 들여다보면 당대 삶의 고뇌가 묵직하게 드러난다. 김영나 관장은 “시대에 따라 어떤 계층이 어떤 분야를 집중 후원했는지 살펴서 종교로서의 불교 이면에 담긴 사회사를 찾아보려했다”고 밝혔다.

 한반도 전역에 불교미술이 퍼져나가면서 전국 곳곳에 사찰이 건립된 시기가 고려왕조(918~1392)였다. 이 시대 불사의 제일 큰 손은 국가와 왕실, 귀족과 중앙관료 등 최고 권력자였다. 호림박물관 소장품인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보물 752호)’은 금니(金泥)의 호사스러움에 눈이 부실 정도로 막대한 비용이 든 사경(寫經)이다. 승려나 지역 사회 신도들도 십시일반 여러 형태로 공덕을 쌓았다. 불상 안에 후원자들의 이름과 발원문·사리·경전·직물·곡물 등을 넣는 복장의식이 일반화되면서 불사 참여 인원은 크게 늘어났다. 금은이나 비단 같이 값비싼 재료를 바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동력으로 대신하는 천민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개인이 아닌 신앙 공동체가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 볼만한 후원자 군은 왕실 여성이다. 조선시대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왕실 여성들이 사찰의 건립과 중창, 불상과 불화의 봉안, 범종 제작 등 불사의 거의 전 영역에 손길을 미쳤다. 이는 왕권을 둘러싼 권력다툼에 심신이 고단했던 왕실 여인들이 그만큼 신앙에 기대어 위안을 얻었음을 방증한다.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 윤씨(1501~65)가 발원한 ‘약사삼존도’가 대표 유물이다. 전시는 8월 2일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무료. 스마트폰에서 ‘아뜰리에’ 앱을 다운받아 ‘발원, 간절한 바람을 담다’전의 무료 전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02-2077-9000.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이 과거 불교미술의 흔적을 좇고 있다면, 서울 율곡로 갤러리 아트링크(대표 이경은)에서 열리는 ‘내 안의 부처’는 현재진행형 전시다. 전통미술의 큰 갈래인 불교 유물을 오늘 여기로 끌고 와 그 정신과 정진(精進)의 미감을 풀어놓는다. 특히 고려인에게 미망(迷妄)의 세계에서 피안(彼岸)의 세계로 건너게 해주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의 구실을 했던 미술의 역할을 되새긴다.

 어둑한 전시장 구석에서 관람객을 맞는 고려시대 ‘금동관음사유상’은 지그시 감은 눈에 염화미소를 짓고 있다. 그 뒤에 후광(後光)처럼 밝게 빛나는 건 한국 현대미술가 이우환(79) 작가의 붓질 흔적이다. 전시를 연출한 마영범 디자이너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원과 불상을 연결해 부처의 세계를 시각화하고 있다. 이경은 대표는 “내 안의 부처를 깨닫는 건 곧 자기임을 느낄 수 있는 인연의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는 31일까지, 입장료 1000원. 02-738-0738.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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