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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계 제1의 왕좌」지키는 미「엑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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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석유메이저 엑슨(EXXON)만큼 큰 기업그룹은 없다.
매년 「세계제l」의 왕좌를 고수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전망이다. 현재 엑슨은 세계 1백여국에 5백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뉴욕에 있는 엑슨본사 1개사의 83년도 매상고만해도 86억5천만달러,우리돈으로 약71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국내 10대그룹 전체연간외형(4백82억달러) 의2배에 가까운 규모고 일본 최대의 기업집단인 삼정그룹도 엑슨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83년현재 순자산이 6백29억달러로 한국 10대그룹(3백27억달러) 의 2배다. 83년이익은 54억달러에달해 한국 10대그릅(5억3천만달러) 의 10배다. 일본30대 기업을 합친것과 비슷하다. 미국2위인 GM은 매상에 있어선 엑슨을 비슷하게 따라가고 있지만 순익에 있어선 어림없다.

<상거래 신의 철저>
변화무쌍한 기업의 세계에서 이정도의 덩치를 유지하고 매년「1등」의 자리를 지키려면 엑슨의 경영체질에 어딘가 지독하고 별난데가 있을것 같지만 실상 세계의 대기업치고 엑슨만큼 오랜기간 배부르고 편안한 장사체질이 몸에 밴 기업도 없다.
올해로 만1백2년째가 되는 엑슨의 역사에 경영위기의 슬기로운 극복이나 이렇다할 기업변신의 기록은 없다.
오히려 엑슨은 2차오일쇼크이후 막대한 수익을 재투자할 새로운 투자업종을 찾지못해 고민하다가 모처럼 12억달러의 거금을 털어 시도한 기업합병이 보기좋게 실패한 경험이 있다.
석유업계의 왕자로 군림하는 엑슨의 경영진이 석유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얼마나 문외한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처럼 가끔 미련하고 우직스러운짓을 하는 엑슨이지만 l백년 이상을 석유업에만 매달려오면서 이루어온 엑슨 특유의 경영체질에는 여러가지로 배울점이많다.
엑슨은 기업경영에서 업종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며 주식의 완전한 분산을 통해 철저한 전문경영인체제로 그 큰 살림을 효율적으로꾸려가고 있다.
적어도 미국내에서는 『엑슨과 거래하는 기업은 손해 안본다』는 정평을 얻을 정도로 상거래상 신의를 얻고있는 엑슨의 신입사원교육·배치·승진제도에는 매우 능률적이고 독특한 합리성이 있다.
또 다른분야에는 문외한 일지몰라도 석유·석탄분야에서의 엑슨의 투자는 놀랄만큼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루어진다.
오늘날 세계제l의 거대기업으로 자리를 굳힌 엑슨은 처음 창업 당시의 업종선택에서부터 그럴 운명을 타고났다.
세계에서 최초로 유전이 발견된 것이 l859년 미 펜실베이니아에서 였는데 엑슨의 창업자「J·D·록펠러」가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라는 이름으로 석유회사를 세운것은 이보다 23년뒤인 1882년이었다.
지독한 구두쇠로 담배장사로부터 사업을 시작했던「록펠러」는 그의 나이 43세때 석유사업에 착안, 우선 미국 전역의 석유유통조직을 하나하나 장악해 그의 회사를 통하지 않고는 석유를 생산하더라도 팔수없도록 하는 방법으로 독점자본을 이루어갔다.
당시「록펠러」의 기업 합병솜씨는 얼마나 혹독했던지 불공정거래의 표본으로 악명이 높았고 결국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의독점횡포는 미국정부가 독점금지법(Anti-trust law) 을 제정하게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마침내 1911년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미 정부의 기업분할명령 제1호에 의해 스탠더드 오일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 오하이오등 미국내 각지역별 7개회사로 쪼개졌다. 「록폘러」가는 그중 규모가 가장 큰 스탠더드 오일 뉴저지만을 갖게됐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엑슨의 모체다.
오늘날「록펠러」가의 엑슨소유는 록폘러 브러더즈 펀드의 지분율 2%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석유탐사라는 작업이 원래 위험부담이 많고 또 워낙 덩치가커서 웬만한 투자손실에는 꿈쩍도 않을수있는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엑슨은 철저하게 「장기적인 수익전망」의 기준에서 경영을 한다. 단기적인 경영상의 기복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지난78년 플로리다 대륙붕 탐사에 거의 10억달러를 쏟아붓고 유전발견에 실패했을때도 엑슨의최고경영진은 별다른 문책인사없이 문제를 덮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만장일치 의사결정>
74년 1차 오일쇼크직후의 세계적인 불경기때 엑슨은 모든계약을 그대로 이행했다.
엑슨은 이때 다른 기업들로부터 「석유회사의 UN」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었다. 물론 이후의 거래에서 실익도 얻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국석유회사중 처음으로 중동지역에의 해외투자를 시도한것도 엑슨이며 미국내에서 탄광에 손을 대기 시작한 이후 10년만에야 엑슨은 석탄산업분야에서 흑자를 봤다.
엑슨의 경영조직·의사결정·사원교육·승진제도등은 매우 독특하다.
엑슨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은 뉴욕 본사의 경영위원회 (Management Committee) 다. 회장·사장·수석 부사장 (Executive vice President) · 선임 부사장(Senior vice President)급 까지 보통 7∼10명으로 구성되는이위원회는 통상 만장일치로 의사결정을 한다. 비록 드물긴하지만 만일 한 사람이라도 반대의견을내면 그 안건은 다시 하부조직으로 되돌려져 재검토된다.
한편 엑슨은 신입사원을 선발하면 간단한 오리엔테이션후 누구든 한달간의 영어교육코스를 거치게한다.
미국인이든 아니든, 박사든 석사든 모두다 이 과정을 거쳐야하는데 정확하고 간결한 영어로 말하기·쓰기를 집중적으로 훈련받는다.
상사에게 업무보고를할때 가장짧은시간에, 가장많은 내용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생각이 복잡한 박사학위소지자들이 가장 애를 먹는다는 이 교육과정의 테스트성적은 물론 인사고과에 크게 반영된다.
업무상의 소소한 실수에는 더할수 없이 관대한 엑슨이지만 직급에 따라 침무실의 양탄자 빛깔, 커튼의 길이까지가 일일이 차이가 날만큼 상하의 구분이 몹시 엄격하다.
또 심리학자가 고안했다는 엑슨의 인사고과 평가표도 매우 독특하다. 1년에 2번씩 바로 위의 직속상사 한사람만이 작성하는 평가표는 이른바 「제거과정」이라는 방식을 통해 빈칸의 가장 위에 부하직원중「가장 필요한 사람」을 적고 가장 밑에「가장 불필요한 사람」을 적은후 다시 나머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 필요한 정도에따라 순위를 매기는 식이다.

<남부인이 인맥주류>
이처럼 매우 합리적으로 조직을 꾸려가는 엑슨이지만 역시 엑슨에도 어두운 구석은 있다.
엑슨내에서 출세하려면 미 남부지역의 사루리를 써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엑슨의 인맥은 매우 폐쇄적이다. 미국의 유전지대인 텍사스·루이지애나·오클라호마주출신들이 엑슨인맥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 수없이 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엑슨은 원칙적으로 합작회사형태를 피하고 1백% 단독출자 현지법인만을 고집하고 있다. 다국적기업중에서도 유난히 폐쇄적인 엑슨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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