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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국제 결혼…하와이에 온 여인들의 애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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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편따라 코쟁이 나라에 건너오니 당당하기 이를데 없어요. 서울에서 배웠던 서투른 영어로 막상 이곳에서 생활하려니 말하기는커녕 재대로 알아듣지도 못해요. 이태원골목의 떡볶기 생각이 간절해요』
2년전 용산에서 남편 「그레그」상병(25)울 만나 1변전 하와이로 이주한 이복자씨 (25) 의 호소다.
이씨가 살고있는 스코필드는 미보병25사단 주둔지. 호놀룰루에서 승용차로 4O분 거리에 있는 오아후섬의 중심지다. 스코필드와 인근 와히아와 마을에는 이씨처럼 미군병사와 결혼, 이주한 한국여인이 1천여명이나 된다.
남편이 현역인 경우가 약4백명, 퇴역장병들과 살고 있는 여인들이 약 6백명으로 이들중 2차대전 직후에 결혼한 사람은 이미 환갑을 넘어 할머니가 됐다.
이 지역은 1903년 이민선을 타고 처음으로 하와이 땅을 밟은 한국인이민 1세들이 살던 곳.
구릉지대인 와히아와 일대에는 광활한 파인애플농장과 사탕수수밭이 있어 이민1세들은 이곳에서 품을 팔아 초기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이혼율 70%정도>
현재 와히아와 일대에 거주하는 한국동포는 이민2, 3세를 포함, 약3천명. 이민2, 3세들은 안정된 중류생활을 하고 있으며 2차 대전 당시의 혼란기에 이곳의 지주들이 땅을 싸게 팔거나 버리고 떠나는 기회를 잡아 백만장자가 된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이처럼 순탄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이민2 ,3세와는 달리 국제 결혼한 한국여인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사는 편.
어릴 때 불우한 환경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건너봤기 때문에 영어를 제대로 못해 언어소통에도 어려움이 따르고 익숙하지 못한 생활습관으로 고통스런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다.
이 같은 역경을 이겨내지 못해 자연히 이혼율도 증가, 미국 전체 평균 50%를 훨씬 넘는 70%로 알려지고 있다.
이혼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불화로 부부싸움도 잦아 남편에게 폭행당하거나 심한 경우 정신이상을 일으킨 여인들도 섰다. 폭행을 당해도 고소조차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인 남편들은 번지르르하게 둘러대는데 반해 한국인 부인들은 짧은 영어로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결혼이 참담한 실패로 끝난 박미혜씨(27·가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박씨는 4년 전 흑인사병과 문산에서 결혼, 애리조나주에서 2년간 살다가 지난해 봄 하와이로 왔다. 가정적이던 그녀의 남편은 그 해 여름부터 갑자기 달라졌다.
내용을 알 수 없는 편지가 사흘이 멀다하고 배달되는가 하면 남편은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며 공연한 트집끝에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마음이 든 박씨는 방안에 쌓인 편지를 들고 영어를 읽을 수 있는 다른 한국인 부인을 찾아갔다.

<갖가지 피해사례>
그곳에서 박씨는 남편이 1년 전부터 한 여인을 만나 그 여인이 임신 8개윌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알수 있게 됐다.
남편은 그후 한푼두푼 집안살림을 축내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수천달러의 빚까지 짊어겼다. 첫돌이 갓 지난 딸까지 둔 박씨는 결국 남편으로부터 이유없는 이혼을 당하고 아기까지 뺏겠다.
이때의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된 박여인은 발가벗고 거리를 헤매다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신세가 됐다·
이외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피해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남편이 오랜 현역 생활 끝에 제대하는 경우는 중산층이 될 수 있다. 연금혜택에 PX에서 면세상품도 구입할 수 있고 의료시혜도 거의 무상으로 제공받는다.
이에 비해 현역부인들의 생활은 어려운 편.
사병의 봉급이 7백∼8백달러선 인데다가 그나마 남편들이 부인에게 경제권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부업기회도 적다.
일부는 미군상대 술집에서 일하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이혼 당하기가 일쑤.
남편이 장교이거나 혹은 사병이라 하더라도 만기제대까지 간 경우는 안정된 삶을 누린다.
전남여수여고를 졸업, KBS여수방송국에서 l년동안 성우로 일한 후 서울에서 무용공부를 하다 남편 「클랩피튼」씨 (45·중령·치과의사)를 만났다는 정홍자씨(40)는 월3천달러의 봉급으로 비교적 넉넉한 편.
어려운 생활중에도 많은 한국부인들은 고국의 가족들에게 꼬박꼬박 돈을 부친다.
지난날의 가난과 공부기회를 놓친 것이 통한이 됐던 이들은 부모를 돕고 동생들이 공부를 더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활비를 쪼개고 따로 벌어 다달이 얼마씩이라도 보낸다는 것이다.
82년 혼성 보컬팀의 일원으로 호놀룰루에 취업차 왔다가 지난해 결혼했다는 최혜정씨 (22) 는 매월 8백달러씩이나 서울의 부모에게 보내고있다.

<고국에 돈 꼬박 부쳐>
최씨의 남편은 이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부인의 갸륵한 마음씨를 칭찬해주는 보기 드문 미국인.
와히아와의 올리브연합감리교회는 l907년 초대 한국이민들이 세운 역사 깊은 한인교회. 이곳의 한국인 교민들은 이교회의당인 김창환 목사(50)를 정신적인 지주로 삼고 있다. l7년간 이 교회를 말아온 김목사는 미국인과 사는 한국인 부인들뿐 아니라 교포사회 전체에「김변호사」로 통한다. 김목사는 11년전 교회안에 가정상당소를 설치, 남편에게 매를 맞는 동포여인을 돕게 된 것이 상담소의 설립계기라 말했다. 그는 『한국여인들은 국제결혼을 미국으로 이주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든가 불우한 환경을 벗어나는 지름길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미군의 경우는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진정한 사랑으로라기 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결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파경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국제결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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