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머 너마저 …" 부시에 등 돌리는 전직 측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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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또 뒤통수를 맞았다. 이번엔 폴 브레머(사진) 전 이라크 최고행정관으로부터다. 그는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뒤 2003년 현지 최고 책임자로 임명돼 1년 이상 부시 행정부의 대이라크 정책을 직접 집행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상파 TV에 출연해 "미국은 이라크에서 (반군들을) 이길 수 있는 전략이 없었다" "미 국방부는 현지 상황을 왜곡하곤 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부시 행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물러난 뒤 대통령에게 화살을 날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폴 오닐 전 재무장관과 리처드 클라크 전 백악관 테러담당 조정관도 그랬다. 고위직들이 퇴임한 뒤 현직 대통령을 이렇게 공격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이다.

?전 이라크 총책까지 부시 비난=브레머 행정관은 8일 NBC TV의 '데이트 라인'에 출연했다. 자서전 '이라크에서 보낸 한 해'출간을 하루 앞두고서였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나는 처음부터 이라크 주둔 미군 병력의 규모와 질적 수준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며 "부시 대통령에게 잘 살펴보라고 건의했지만 그는 자기 주변만 보호하는 스타일"이라고 지적했다.

2004년 5월에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에게 미군이 50만 명 필요하다는 편지를 보냈지만 답을 듣지는 못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부시 행정부는 처음부터 대량살상무기에만 관심이 있었고, 전후 반군이 기승을 떨칠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며 "이라크인은 미군을 무능한 점령자일 뿐 아니라 기본적인 법과 질서도 수호하지 않는 집단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총책임자를 지낸 인물이 한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브레머는 2003년 11월 딕 체니 부통령과 나눈 대화도 소개했다. 브레머가 "(반군과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 전략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체니 부통령이 "나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

NBC 방송은 "그 발언은 체니가 그즈음 공식 석상에서 국민에게 하던 말과는 아주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브레머는 인터뷰를 한 기자가 "왜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비판도 있다"고 하자 "나는 개인적으로 할 일을 다 했다. 책임은 대통령이 지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그 엄청난 백악관에서 많은 월급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냐"고 대답했다.

?퇴임 뒤 부시 공격은 유행?=전직들의 부시 공격에는 패턴이 있다. 사임한 뒤 1년쯤 준비해 회고록을 펴내고, 그때부터 언론에 나와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오닐 전 재무장관은 '충성의 대가'라는 책을 출간하며 부시 대통령을 '언어장애인들에 둘러싸인 시각장애인'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클라크 전 테러담당 조정관은 '모든 적들에 맞서'라는 책에서 "대통령은 정보기관의 알카에다 경고를 무시했다"고 공격했다. 그는 또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와 이라크를 연결하라고 강요했다"고 폭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클라크는 2004년 4월 9.11 테러진상위원회의 청문회에도 출석해 비슷한 말을 했다.

백악관은 배신감도 느낄 테지만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어 고민이다. 재무부는 오닐 전 장관이 처음 책을 펴내자 "정부의 기밀서류를 유출했는지 조사하겠다"며 법석을 떨었으나 결국 흐지부지됐다. 그 뒤부터 부시 행정부는 가급적 무대응으로 임하고 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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