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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전방위 압박 속 여론 나빠지자 백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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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주지역 5개 사립학교가 신입생 배정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가운데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시·도 지역회장들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긴급회의를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5일 제주에서 시작된 신입생 배정 거부란 사상 초유의 사태가 3일 만에 진화됐다. 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는 8일 회장단회의를 열고 갑론을박 끝에 신입생 배정 거부 입장을 철회했다. 청와대 등 정권 차원의 전방위 압박과 신입생 배정 거부에 대한 거센 비판 여론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개정 사학법에 대한 사학의 반대는 여전하다. 신입생 배정 거부 입장을 제외한 나머지 투쟁 방안은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사학 비리에 대한 근본적 척결 계기로 삼겠다고 벼르고 있어 불씨는 남아 있다.

◆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백기=정부는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강경했다. 8일에만 네 차례 관련 회의가 열렸다. 교육부는 물론 청와대.총리실까지, 내놓는 대책마다 '초강수'였다. 사학단체는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오후 1시 사립중고법인협의회가 긴급회장단 회의를 소집할 때까지만 해도 난상토론 기류였다. 회의에 앞서 김하주 회장은 "사실 고민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7일 제주 사학이 배정 거부를 철회했지만 여전히 신입생 배정 거부를 강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컸다. "이미 900여 이사장이 네 차례에 걸쳐 결의한 것"(한 관계자), "제주 등은 (정부 등 공세에) 버티기 쉽지 않은 곳이어서 애초부터 서울 등 대도시 중심으로 신입생 배정 거부를 논의해 왔다"(한 이사장) 등의 목소리다.

당국은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교육부는 오후 2시 15개 시.도교육청 감사관 회의에서 비리 사학에 대한 감사 방안을 마련했다. 이어 청와대에선 신입생 배정을 거부한 사학에 파견할 임시 이사를 공모하겠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는 이사장들이 학교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다는 의지 표현이었다. 오후 5시엔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이해찬 총리 주재로 김진표 교육부총리, 천정배 법무부 장관, 오영교 행자부 장관 등이 참석하는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그러자 협의회 회의장에서 새어나오는 톤이 달라졌다. 오후 4시까지는 "10일 이사회를 열어 입장을 정리하자"고 했다. 한 참석자는 "(배정 거부에 대한) 찬반이 반반"이라며 "어차피 사학법이 통과돼 달랑달랑한 목숨이어서 (감사 등으로) 잃을 게 없다"며 강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두 시간 뒤 협의회는 결국 배정 거부를 철회하는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 교육부의 채찍과 당근=정부는 이날 관계장관회의에서 사학 운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본격적인 특별감사를 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사학이 더 투명해지는 절차상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비리 사학이 파악되는 대로 시.도교육청에 특별감사를 지시할 방침이다. 교육부와 감사원은 감사 인력도 지원한다. 교사 채용.시설관리.공사 관련 비리 등 중점 비리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앞으로 사학에서 중점 비리 유형에 해당하는 비리는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화하는 등 비리 예방 차원의 감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감 결과는 수시로 공개될 예정이기도 하다.

교육부는 '당근'도 마련했다. 개방형 이사에 대한 재추천권을 학교법인 측에 주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전교조 등 학교법인이 꺼리는 인사가 추천될 경우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건전 사학을 지원하는 법령을 제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 "모두 한 발씩 물러나야"=신입생 배정 거부 사태가 진정됐지만 학교 현장의 혼란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다수다. 사학이 물러서긴 했지만 불신은 여전하다. 사학들은 신입생 배정 거부를 제외한 다른 투쟁 방법은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정연택 장로는 "사학법 반대 1000만 명 서명운동은 물론 19일 반대 기도회도 예정대로 여는 등 반대 투쟁은 계속한다"고 말했다. 가톨릭도 같은 입장이다.

정부는 이참에 손을 보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도 변수다. 학교 현장에 한바탕 '사법 바람'이 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교총의 한재갑 대변인은 "무조건 사학을 찍어누르는 듯이 해선 곤란하다"며 "힘있는 정부.여당이 먼저 원칙적으로라도 사학법 재논의를 약속하고, 사학도 정상적으로 학교 운영을 한다고 뒤따르는 게 순리가 아니겠느냐"라고 밝혔다. 반면 전교조 한만중 대변인은 "헌법재판소에 위헌 판단을 맡겼으면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고정애.최현철 기자 <ockham@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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