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아시아] 중국, 항공산업 띄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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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브라질 합작 설립 항공사인 '하얼빈 엠브레이어'가 개발해 지난해 2월 선보인 여객기 ERJ 145. 50인승의 단거리용인 이 여객기는 중국 남방항공에서 구입했다. [하얼빈 AP=연합뉴스]

중국이 2006년부터 항공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세계 최대 규모로 급팽창한 자국의 항공기 시장을 외국에 뺏기지 않기 위해서다. 그뿐만 아니다. 10년 안에 미국 보잉사, 유럽의 에어버스사와 함께 세계 시장을 삼분하겠다는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까지 말한다. 중국은 향후 20년 동안 1700여 대의 여객기(좌석 110석 이상)를 발주할 전망이다. 군사적 의도도 작용하고 있다. 항공기 제작기술이 첨단 전투기를 개발하는 데 그대로 응용되기 때문이다.

◆ "시장을 내주고 기술을 확보한다"=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취임 직후인 2003년 5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중국과학기술원 과학자 20여 명이 연명으로 보낸 편지였다. "중화민족 부흥을 위해 가장 먼저 항공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항공산업 없이 첨단 기술을 얻을 수 없고, 첨단 기술 없이 미국과 유럽의 장벽을 넘을 수 없다…." 며칠 뒤 원 총리는 과학자들을 불러 "우선 시장을 내주고 기술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원 총리는 지난해 12월 초 프랑스 방문 당시 에어버스 A320 여객기 150대 구매계약을 했다. 금액으로는 100억 달러어치나 된다. 대신 프랑스는 첨단 기술 이전을 약속했다. 중국 항공부 관리는 "이번 구매 계약은 기술 확보를 위한 수업료다. 2006년은 중국 항공산업이 비상(飛翔)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에어버스사는 지난해 12월 최신 기종인 A320 날개 조립공장을 7년 안에 영국에서 중국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에어버스사의 중형 항공기 조립공장 역시 중국으로 이전될 전망이다. 이 회사 구스타브 훔베르트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34%인 중국 시장 점유율을 50%까지 높이려면 기술 이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지난달 26일 6억 유로(약 7190억원)를 투자해 중국과 함께 6~7t급의 민용 헬리콥터를 공동 개발키로 했다. 16명이 탑승하고 직강하가 가능한 EC175 기종이다. 군사용으로도 응용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을 갖췄다. 2009년 하얼빈(哈爾濱) 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 "항공산업 없이 강대국 될 수 없다"=중국 항공부 비행국 후시타오(胡溪濤) 국장은 "항공산업 없는 중국의 강대국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항공기 제조기술 자체가 곧 군사력을 의미한다. 부가가치 역시 다른 산업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항공기 시장은 현재 미국 보잉(60%)사와 유럽의 에어버스(34%)사가 양분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첨단 전투기 개발.제작 능력이 도태될 것이라고 중국 항공 관계자들은 주장한다. 중국은 매년 100억 달러어치의 첨단 무기를 러시아와 유럽에서 구매한다. 지난해엔 80억 달러 규모의 러시아제 전투기와 폭격기를 수년간에 걸쳐 구매키로 했다.

◆ 탄탄한 기초기술이 강점=상하이(上海)에 있는 국영 비행기 제조공장 한쪽엔 대형 제트 여객기 한 대가 전시돼 있다. 1970년 마오쩌둥(毛澤東)이 항공기 분야에서 미국.소련.유럽을 추월할 기술을 확보하라고 지시한 뒤 10년 만에 자체 기술로 만들어진 '윈스(運十)'다. 하지만 이 기종은 상용화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84년 후야오방(胡耀邦) 등 당시 지도부가 외국 비행기를 도입하는 게 가격.품질 면에서 더 낫다는 경제 논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항공 관계자들은 "당시 중국이 '윈스'상용화를 추진했다면, 현재 세계 항공기 시장의 30%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중국은 90년대에 다시 항공기술 개발에 나서 60석 이하 소규모 여객기를 생산 중이다. 지금까지 20여 기의 소형 여객기(2600억원 상당)를 수출했다. 중국과학기술원 왕다헝(王大珩) 원사는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6호 발사에서 보는 것처럼 중국의 항공 분야 기초기술은 탄탄하다. 올해부터 이를 상용화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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