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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쇼크와 미 무역마찰 교훈과 대응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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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컬러TV 덤핑 홍역은 여러 면에서 정부·업계에 교훈을 주고 있다.
혈맹 미국이 이럴 수가 있느냐는 원망에서부터 아직도 초기 수출 때의 예외적 대우를 받으려는 생각, 미 보호무역장벽에 대한 과소평가 등과 관련해 재인식과 반성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홍원탁 교수(서울대 무역학과)는 『미국이 어떤 경로로 무슨 수입 규제 안을 마련하고있는지에 관해 정부나 기업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지나친 낙관에서 출발한 감정적 대응방법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박용상 대한상의이사는 미 정책·제도의 성격과 운영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하는가하면 금성사의 김일출 수출사업부장 같은 이는 무역경쟁의 좋은 경험 배웠다고 말한다. 김진호 상공부장관도 지난 1년간 한국통상 외교가 많이 늘었다는 말로 자생의 뜻을 나타냈다.
각계의 공통적인 반성은 미국의 보호주의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데 모아지고 있다. 미국은 근원적으로 관대한 시장이지만 일단 정치적 필요가 생기면 가차없이 응징한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선 일본이고 EC고 간에 벼랑까지 몰고 간다.
과거의 협상역사가 그랬다. 몇번 경고를 하고 그래도 고칠 조짐이 없으면 초 강경책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식이다.
일본이 몇 번이나 그런 경험을 했고 한국도 71년 섬유협상 땐 정말 팔을 비틀리다시피 하여 미국의 의도대로 사인을 해야했다.
71년 달러화의 김태환 정지선언도 세계를 경악케 한 미국의 강경 경제방어 조처였다.
컬러 TV에 대해서도 미국으로선 몇번 경고를 한 셈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관민 모두가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미국이란 나라와 그들의 정책관행에 소홀했던 것이다.
선거를 앞둔 미 업계의 영향력과 「레이건」행정부의 정치적 절박성을 가볍게 본 것이다. 컬러TV의 대미수출은 82년 61만9천대에서 83년엔 1백93만3천대로 급증했다. 덤핑관세율 (14·6%)이 결정된 후에도 여전해 금년1·4분기 중 40%가 증가했다.
덤핑관세율부과는 수출을 자제하라는 신호인데 그것을 무시한 결과가 됐던 것이다. 내수·수출가격이 비슷한 삼성전자와 금성사 TV 마진률에 그토록 격차가 난 것도 삼성이 수출을 월등히 많이 하는 선두주군이기 때문에 경고적 의미로 호된 마진 율을 맞았다는 해석도 있다.
계산상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응징적 보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보복은 정치적 타결로 풀어야 하지만 그런 사태를 사전 예방하기 위해 미국의 보온주의 움직임과 그 메커니즘에 대한 보다 조직적인 정보망과 대응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반 덤핑제소가 터져 나올 때마다 한국은 미 변호사 몇명을 고용, 청문회에 대신 나가게해서 입장을 대변하는 정도를 놓고 아직도 일부 정부당국자는『일류변호사를 동원했다』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각종협회 등 업종단체별로 전문가를 확보·지원·활용하고 (김일출 부장),지역별·품목별 전문가를 양성하고 (조규하 전경련 상무),정부차원에서 수집되는 해외정보를 민간 기업에 제공하는 기능을 강화해야한다 (정재덕 국제상사 사장)고 말하고 있다.
11명에 불과한 해외상무관을 늘려야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정보가 신속하고 정확해야 사전대응책도 미리 강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효과적인 처방을 내릴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작년 컬러TV덤핑제소가 터지고 금년초 미국제무역위원회 (ITC) 와 상무성의 심의가 진행되어서야 분위기를 개선해보겠다고 대규모 구매 사절단을 보내 30억 달러 어치의 각종 물자를 구매했지만 결과는 돈을 제대로 쓸곳에 쓰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수입규제 시련을 겪은 일본이 미국에 8백여명의 로비이스트를 고용, 조직적·장기적 로비를 행하고있는 사실도 참작해야 할 것이다. 또 대만도 한국보다 더 많은 수출을 하지만 별 마찰이 없다.
정부차원의 통상외교와 아울러 기업이 보호무역주의 실상에 대한 인식을 높여 자율적 대처에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선 무역협회 같은데서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무협은 수출 특계 자금으로 수입액의 0·2%를 떼고 있는데 이 돈을 바로 로비활동 등에 써야한다는 지적도 나오고있다.
업계에서는 정부 쪽에서도 수입규제를 유발하는 행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정부가 그 동안 「선진한국」「개도국 졸업」을 과잉 홍보함으로써 「제2의 일본」인식과 이에 따른 수입규제를 자초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의 김정수 박사는 『한쪽으로는 장사가 되건 안되건 수출을 많이 하라고 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장사가 되는 걸로 공정하게 무역하라고 하는 것부터 시정하지 않으면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고 지적한다.
미국등 선진국의 보호주의 완화는 당분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더 이상 한국이 급속한 수출신장만을 추구해서도 안되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물량위주의 수출에서 부가가치중심의 수출로 전환해야한다는 의견들이다.
삼성전자의 노근식 수출담당이사는 품질 및 가격경쟁력을 높여 마케팅을 강화하는 한편 신상품·자체브랜드 개발 등으로 한국상품의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고있다.
정부로서는 기반투자·현지법인 진출을 권장하고 부품수출 및 수입국 생산부품을 부착시켜 수출을 확대하는 등의 다각적인 방안을 밀고 나가야 하겠다고 김철수 상공부 제1차관보는 밝히고있다. <한남규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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