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의 「수방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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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번 우리가 겪은 장마는 근래 보기 드문 천재였다. 강우의 시간적 강도와 양을 따지면 25년의 이른바 을축 년 대 홍수 때 보다 한강의 홍수량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홍수를 막기 위한 수방 시설이 많이 건설되어 그나마 한강의 범람을 막고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소양 댐에서 팔당댐에 이르는 다목적 댐들이 수량조절 기능을 하지 않았던들 서울의 피해는 훨씬 더 많았을 게 틀림없다.
인위적인 시설의 덕을 이처럼 보았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아무리 무서운 천재지변이라 해도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다는 듯이 된다.
이번 홍수를 겪은 뒤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에서 어떤 수방대책을 세우는지 관심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천재지변에 대비하는 일은 국토종합개발이란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번 장마의 피해상황을 볼 때 불가항력으로 돌릴 수만도 없는 부문이 너무도 많았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는 없다.
서울시가 침수지역과 일반 지역에 대한 장·단기 수방 대책을 서둘러 마련한 것은 일부 「인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의 피해지역 가운데서도 망원동 같은 곳은 좀더 일찍 손을 썼더라면 침수를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
당국은 이번 홍수피해를 1천3백억 원 쫌으로 추산해서 발표했지만 피해액이 그보다 훨씬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가령 1만 가구 4만 명의 수재민을 낸 망원동 지역 만해도 당국 추계 이상의 피해가 났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망가진 망원 수문을 새로 만드는 일을 포함해서 총2천6백 억 원을 들여 연차적으로 수방 시설을 설치하는 일도 물론 필요하지만 엄청난 피해를 내게 한 원인을 철저히 가리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워낙 치산치수 대책이란 1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천재에 대비해서 짜여져야 하는 것이다. 99년 동안 아무 일 없어도 한번 홍수가 지면 그때까지 이룩된 모든 것을 몽땅 쓸어가는 무서운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여의도 샛강을 매립하려한 계획이 단견이었음은 자명해진다.
만약 샛강을 메웠다고 할 때 그에 따른 수량이 어디로 흘러 어떤 피해를 더 냈을 지를 상상해본다면 샛강매립계획을 백지화 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망원동 수문이 그 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건설업자들의 고질화된 부실·날림공사도 이 기회에 고쳐지지 않으면 안되겠다.
특히 공공시설의 부실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빚는지는 이번 홍수가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업자들이 대충 만들어놓고 눈가림 준공허가만 받으면 그 뒤는 아랑 곳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함은 말할 것도 없고, 공무원들 또한 시민들의 생명과 의견에 직결되는 시설물들을 점검하고 관리하는데 보다 세심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시련을 딛고 극복하는데서 인류는 발전한다. 물난리를 그렇게 겪고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비슷한 피해를 되풀이해서 당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한강의 수방 대책이 서울 시 만으로 세워질 수는 없는 일 일것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긴밀히 협조해서 보다 종합적이고 효율적이며, 항구적인 대책이 세워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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