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텔링] 택시서 주인 잃고 … 평택항서 보자기 싸여 눈떠보니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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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손길이 나를 깨운다. 창밖으로 중국어 간판들이 흐릿하게 스쳐간다. 한 남성이 내 몸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다. 심드렁한 표정을 짓더니 위안화 뭉치를 진열대에 올려놓는다. 눈치를 보니 저 돈뭉치가 내 몸값이라는 얘기 같다. 내가 중국까지 팔려왔단 말인가.

 마지막 기억은 경기도 평택항이다. 거기서 나는 ‘다이궁(代工)’이라고 불리는 보따리상에게 넘겨졌다. 보따리상은 나를 큰 보자기로 덮어버렸다. 암흑 속에서 나는 정신을 잃고 중국으로 실려온 모양이다. 그게 불과 한 달 전 일이다.

 내겐 복잡한 이름(모델명 LG-F460S)도 있지만 ‘G3’라고 불리는 걸 좋아한다. 지난해 7월 제조된 나는 서른두 살의 회사원을 주인으로 만났다. 나는 그의 삶을 훤히 들여다보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가 누구와 가장 많이 대화하는지, 몇 시에 일어나 뭘 검색했는지 알고 있었다. 심지어 애인과 나누는 은밀하고도 애틋한 대화까지.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많이 그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주인도 나를 애지중지했다. 작은 흠이라도 날까 봐 두꺼운 가죽 케이스로 나를 꽁꽁 감쌌을 정도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소홀히 대하기 시작했다. 술자리에서 흘리고 가 동료가 찾아준 것만 여러 번. 한 달 전 그날도 그는 진탕 술을 마셨다. 새벽 2시쯤 비틀거리며 택시를 잡아 타더니 나를 옆에 던져놓고 곯아떨어졌다. 뒷자리에 있는 나를 발견한 택시 기사가 조심스레 말했다. “손님, 카드는 안 되니까 현금으로 주세요.”

 지금 생각해 보면 택시기사가 일부러 현금을 요구한 것 같다. 휴대전화 분실 신고가 될 경우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택시 기사는 주인 잃은 나를 집어들고 웃음을 지었다. 그날 새벽 택시기사는 나를 청량리역으로 데려갔다. 역 주변에 휴대전화 불빛을 흔들고 있는 중고생 5~6명이 보였다. 무슨 수신호를 하듯 계속해서 불빛을 흔들었다. 택시기사가 다가가 창문을 내렸다.

 “아저씨, 물건은요?”

 “ 손님이 두고 내린 G3야. 얼마 줄 거냐.”

 “15만원 쳐드릴게요.”

 나는 중고생들의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에는 커다란 문신을 한 남자가 나를 데려온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일 똑바로 안 할래? 최신형을 더 많이 가져와야지!”

 남자의 이름은 한. 스무 살이었다. 가출한 중고생들에게 분실된 휴대전화를 수거해 오는 일을 시키고 있었다. 택시기사가 취객이 흘린 휴대전화를 건네면 아이들이 수거해 한씨에게 전달했다. 최신형 휴대전화는 30만원, 나머지는 5만~25만원 선에서 거래된다고 했다.

 가출 청소년들은 처음엔 용돈을 벌어 보려고 이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씨가 아이들에게 주는 수수료는 한 대당 1만원에 불과했다. 일이 힘들어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아이들은 한씨에게 붙잡혀 야구방망이로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한씨의 사무실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분실물 수십 개가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아이폰5’는 수출신고필증을 받은 중고 휴대전화 상자에 넣어져 팔려갔다. 노트북도 있었다.

 한씨는 지난 6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구속됐다. 하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한씨처럼 분실물을 불법 취득해 해외로 팔아넘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경찰에 접수되는 분실물은 매년 평균 67만여 건. 운 좋게 주인의 품으로 되돌아간 건 40% 정도다. 나머지는 해외나 국내 중고시장에 나처럼 팔려가게 된다.

 중국 매장에 진열된 나는 조금 전 한 여대생에게서 선택을 받았다. 이제 유심칩이 새로 끼워지면 옛 주인과의 추억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한씨 사무실에서 나와 함께 있던 그 많은 분실물은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손국희·백민경 기자 9key@joongang.co.kr

 ※이 기사는 경찰 등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한씨가 중국에 팔아넘긴 휴대전화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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