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원말 중국왕족 출신 | 서촉서 고려귀화· 연안에 터잡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명씨는 지나의 왕족이었다. 시조는 명옥진-. 지나대륙을 한때 지배했던 원의 세력이 기운 l362년 (고려 공민왕11년) 그는 지나 서부의 오지 서촉 땅에서 자립, 성도에 도읍을 정하고 왕위에 올랐다. 나라이름은 하.
명옥진은 선정을 베풀다가 왕위에 오른지 4년만에 죽고 그의 아들 명승이 왕위를 계승했다.
명승은 현명한 군주였다. 그러나 그때 주원장이 군웅 가운데서 두각을 나타내 지나 통일의 장정에 나서고 있었다.
공민왕20년, 하나라는 주원장의 명의 세력앞에 굴복했다. 9년간의 단명왕조.

<본관 달라도 한핏줄>
나라가 망한 이듬해 명승은 어머니 팽후등 가족 27명을 거느리고 고려에 귀화했다. 일종의 정치적 망명을 한 셈이다. 고려조정은 이들을 따뜻하게 맞았고 공민王은 「관리나 백성으로 삼지않고 (부주관 부주민)」 저택과 노비를 내주어 국빈으로 대접했다. 왕족으로서의 대우를 해준 것이다.
명승은 송도 여단사에 살면서 총낭 윤희종의 딸과 결혼, 우리나라, 명씨의 시조가 되었다.
명씨는 원래 시조 건국지인 「서촉」 을 본관으로 썼으나 후대에 한국서의 연고를 따라 일부 집안은 황해도 「연안」 을 본관으로 하기도 한다. 연안은 명씨의 집단세거지가 돼 조상 명승의 사당을 모신 곳. 아직도 호적상 본관은 두가지로 쓰고있으나 한핏줄이다.
명승의 후예는 조선개국 후에도 국빈으로서의 대접을 받았다. 명승은 이성계와 교분을 터 자주 바둑으 즐겼고 그의 어머니 팽씨는 이태조가 등극할때 용포예의를 지어올려 태조가 감복했다는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또 조선시대의 관복상의와 여자들의 예복인 당의등도 그녀가 최초로 보급했다는 것.
그후 대종은 명승을 화촉군에 봉했고 영조는 그의 후손들에 대해서는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토록 했다.
명의ㆍ 명현ㆍ 명준·명신등 4형제는 우리나라에 명씨의 뿌리를 내린 명승의 아들들.
이둘 중 장남 명의의 후손들은 연안·개성, 둘째인 현의 후손들은 충남서산·청양, 세째인 준의 후손들은 영도, 막내인 신의 후손들은 전남고여 일대에 각각 흩어져 살고있다.
명씨종친회측은 송도에 근거를 두었던 4형제의 후손들이 이렇게 흩어지게 된 시기를 조선 선조조로 보고 있다. 임신왜란(1592) 의 소용돌이 속에서 집안이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명씨는 조선조에서도 벼슬하지 않는 전통을 고수, 이름을 남긴 이도 적다.
조선조의 문파급 제자수는 총5명. 임진왜란때 평택현감으로서 조중봉의 의병과 합세, 유명한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명광계와 숙종때 문과에 올라 예주주낭 보령현감 등을 지낸 명정구, 고종때 유명한 효자였던 명우광, 병비정낭을 거쳐 연안군수로 있을때 선정을 베풀어 명망이 높았던 명범석, 국악사로서 가야금의 명수였던 명완벽등이 그중 알려진 이름.

<일투정 두드려져>
명씨는 일제의 암흑기 항일운동사에 두드려진 자취를 남겼다.
명제태· 명제세· 명이항· 명린화등이 그 대표적 인물등「명제태는 한일합방후 만주로 건너가 장작림군의 지원을 받으며 무장투쟁을 벌였다.
명제세는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광복단에 가입, 독립운동을 펴다 러시아로 들어가 블라디보스토크의 외국어학교를 졸업한뒤 시베리아 일대서 항일투챙을 벌였다. 3·1운동때 체포되어 5년간 복역, 뒤에 불연단을 조직하고 독립활동을 계속, 해방후 건국준비위원회위원· 초대심계원장등을 지내다 6. 25때 납북되었다.
명이항은 21세때 흥사단에 가입했고 3ㆍ l운동 때 조선총독에게 장문의 진정서를 제출했다가 투옥되었다. 출옥후 오성학교를 경영하는 한편 협성학교를 인수, 협성실업학교로 발전시키고 김반식과 함께 광신상업학교를 세우는등 교육사업에 힘을 쏟았다. 1942년에는 고향에 영도여자중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강화서 북향제사>
75년 경제기획원 통계에 따르면 남한의 명씨는 3천8백40가구에·인구 약4만명.이들은 매년 봄가을이면 강화군 교동에 모여 시조 명승의 사당이 있는 북녘땅을 향해 제사를 올린다.교동의 산언덕에 오르면 사당을 모신 마을 황해도 연백군 호동면 패촌동이 가물가물 눈앞에 다가서는 곳.
명씨 중앙종친회의 역점사업은「서촉」 단일 본관통합 대동보 편찬사업. 본관이 다른데서 오는 의견차를 좁히고 한 할아버지의 자손임을 재확인하자는 것이다.
명주완 (의부·전 서용대 의대학장·작고) 명완직 (성남보육원설립자·사회사업가) 명동근 (전 성업공사장 전국상호신용금고연합회장) 명완식 (서울고검검사) 명노승(검사·공주지성장) 명순겸 (변호사) 명호진(의박·서울대교수)씨 등이 해방후 사회각계에서 활약하고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