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교포 34년만에 고국방문|프라하 거주 여류화가 이기순씨, 가족과 함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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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살고있는 한국인 타피스리작가 이기순씨(53)가 34년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을 방문한다.
한국과 체코적십자사, 국제적십자사본부의 3각협력으로 이루어진 이씨의 고국방문에는 체코인남편 「야로슬라브·베이체크」(58),딸「렌가·플레스나」(26),사위「비토르·폴레스나」(36)씨가 동행한다.
이씨일가는 30일 파리발 서울행 KAL기편으로 한국에 가 약 석달동안 머물 예정이다.

<간호병으로 강제징용>
고향인 개성에서 개성고녀를 졸업한 이씨는 서울서 세브란스 고등간호학교에 다닐때 6·25동란을 만났다.
다른 의사나 간호원들과 함께 북괴군 제13야전법원 간호병으로 강제징용된 이씨는 9·28서울수복때 괴뢰군들에게 끌려 철원을거쳐 만주의 장춘까지 갔다.
행군도중 부상했던 이씨는 장춘에서 제대한뒤 여러곳을 전전하다 북경으로 갔으며 52년1월 북경중앙미술학원에 입학했다. 이학교에서 미술공부를 하던 이씨는 이 학교에 연구생으로 유학온 「야로슬라브·베이체크」씨를 만나 57년 북경에서 결혼했다.

<북괴대사관 결혼허가>
당시 이씨는 국제결혼허가를 어디에서 받아야할지 몰라 망설였으나 북경엔 마침 평양측대사관밖에 없어 그곳에서 결혼허가를 받았다.
결혼후 남편과 바로 프라하로 간 이씨는 가사를 돌보는 외엔 줄곧 미술에 전념했으며 67년 북체코에서 가진 첫 타피스리개인전을 계기로 본적적인 작품활동에 들어갔다.
화가인 남편과 함께 결혼예식장이나 미술관·카페등의 벽화·조각·모자이크·타피스리장식등 실내외장식일을 많이 맡아 하고있어 생활은 여유있는 편이다.
텔리비전방송국의 편집기술자로 일하는 이씨의 딸은 영화감독인 「비토르· 폴레스나」씨와 2년전 결혼했다.
이씨는 그동안 동구를 비롯한 유럽여러나라를 자주 여행했으나 북한에는 한번도 못가봤다. 체코정부의 출국허가는 쉽게 나오나 체코인에 대한 북한측의 비자발급이 일반적으로 까다로와 평양을 방문한 사람이 드물다고 이씨는 말했다.

<북한오빠소식은 몰라>
이씨의 고국방문은 런던전시회가 실마리가 됐다. 81,82,83년 세차례 런던에서 타피스리전시회를 가졌던 이씨는 그곳에서 서울에 있는 큰언니 인순씨(71·서울돈암동1가51의20)와 연락이 됐다.
한국적십자사가 큰언니의소재를 찾아주었다. 둘째언니 기숙씨 (57)는 지금 안양에서살고 있다 (평천동 대도아파트406호) .
5남매중 막내인 이씨에겐 북한에서 살던 오빠와 세째언니가 있었으나 그쪽과는 현재 소식이 끊겨 생사를 모르고 있다.
결혼직후 개성에 있는 오빠에게 편지, 평양으로 이사한다는 답장을 받았고 60년어머니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끝으로 서로 연락한 일이없다.
프라하에서 사는동안 이씨는 간혹 텔리비전방송을 통해 KAL기 피격사건·랭군사건등 한국소식을 들었으나 대부분의 소식은 런던등 외국여행때 전해들었고 서울울림픽이야기도 알고있다.

<부부합동 전시회예정>
서울의 언니들과는 서신왕래가 잤았다. 이씨는 자신의 편지가 북한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염려때문에 런던이나 제네바를 통해 서울에 편지를 냈지만 서울서 보낸 편지는 프라하에서 직접 받았다.
체코에는 청진이나 평양에서 온 4명의 다른 한국여인이 체코남자와 결혼해 살고있으나 이씨는 시간이 없어 이들과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있다.
큰언니의 초청으로 이번에 고국을 방문하는 이씨는 서울의 예화랑에서 부부합동 전시회도 가질 예정이다. 이 전시회에는 그동안 이씨부부가 체코에서 제작한 그림·타피스리·조각·도자기등 1백여점의 작품이 출품된다. 【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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