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한일 관계사 왜곡인식 여전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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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982년에 일본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한국에 관한 서술이 왜곡된데 대한 규탄파동은 누구나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6월30일에 일본문부성은 내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사용될 일본사및 세계사교과서의 검정결과를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이미 보도된바와 같이 1982년에 한국정부가 시정을 요구한 19개항목중 이미 83년에 7개항목, 이번에 8개항목 도합 l5개항목을 고쳤으나 안중근의사에 대한 서술을 비롯하여 4개항목은 그대로 남게되였다.
금년 검정결과가 발표되자 일본 매스컴은 특히 한국이나 중공의 반향에 대하여 주의깊게 관찰하고 온건한 논조에 대하여 겨우 안심한성 싶다. 대체로 한국에서의 반향은 4개항목을 미수정으로 남긴데 대한 불만을 표명하면서도 일복측의 시정노력에 대하여 일정하게 평가하고 계속적인 시정노력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일간에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 허다하다. 이런 시기에 교과서검정에 대한 과잉반응으로 하여 양국간의관계를 필요이상 혼란시킨다는것은 삼가야 할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검정과정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문헌을 입수하여 검토한 결과 서술표현상의 시정과는 달리 그들의 역사인식자체가 시정되었다는 gms적을 찾아보기란 매우 힘든다는 것이 나의 소감이다.
그중 몇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가령『일본사』교과서의 경우를 보면-검정을 받기전의 서술에는『일본은 교과서검정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한국등으로부터 국제적비난을 받아…』, 그에대한 『(주)문부성의 검정은 일본의 중국침략과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에대하여 <침략>을 <진출>로 바꾸게 하였고 독립운동을 <폭동>으로 고쳐쓰게 한 결과 82년에 국제적 항의를 불러일으켰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교과서 검정과정에서는 수정을 안하면 검정불합격이 된다는 다음과 같은 「수정의견」을 붙이고 있다.『교과서문제는 무역마찰과 견줄수있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평가도 일정한것이 아니다. 삭제하라』
또 검정을 받기전의 서술에는『일본의 군함 운양호가 정부의 명령을 받고 청국으로 항행중 음료수를 얻는다는 이유로 조선의 영해를 침범해서 한성(지금의 서울)부근의 요새지대인 강화도에 접근하였기 때문에 수비병과 충돌하였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역시 다음과 같은「수정의견」을 붙이고 있다.
『당시 영해란것이 분명치 않았다. 오늘의 생도들에게는 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오해를 줄 위험성이 있다.』그러면 일본군함은 공해에서 한국측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린가.
또 하나의 예를 든다면 검정을 받기전의 서술은『(조선에서는)일본어교육을 철저히 하고 일본식 성명으로 고치도록 창씨개명을 강제하는등 그 지역주민들의 민족성을 부정하는 황민화정책이 실행되어…』로 되어있었다. 이에 대해서도『일본어교육과 창씨개명이 민족성의 부정 그자체를 목적으로 한것같은 인상을 주지말도록』이란「수정의견」을 붙이고있다.
이상 든것은 몇가지 예인데 이번 검정결과를 보면 한국이나 아시아제국에 대한일본의 「침략」의 표현은 전면적으로 부활시키고 있으나 그 내용설명에 대해서는 매우완고하게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있다. 즉 표현기교상의 시정은 단적으로 말하여「외교적 고려」에 의한 것이지 그 밑바닥에 깔려있는 역사인식이란 구태의연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한일관계를 과거의 침략과 피침략에 대한 공통된 도의적및 역사적인식의 토대위에서 굳게 다져나아가기 위해서는 표현기교상의 시정에 따르는 역사인식 그 자체의 시정을 위하여 계속적인 노력과 장기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것이다.
특히 교과서 검정과정을 살펴봐서 간과할수 없는 것은 고쳐쓰기를 요구하는 이유로서 『그런 의견도 있으나 정설은 아니다』 라는 내용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교과서 집필자를 포함한 일본 역사학계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그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정설」을 하나하나 재확인하고 정립시켜 나아가는 작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 일본의 교과서 검정결과를 읽고 느낀 소감의 한 토막이다. 강재언<일본대판대강사·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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