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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폭력 근절」…대학방침 선회의 뜻|면학·질서 분위기 조성 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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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폭력을 강력규제하겠다」는 정부의 학원대책 급선회는 서두르는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2학기에는 이를 방치할 경우 대학사회는 물론 국가장래까지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것으로 당국자는 설명했다.
문교부는 학원에서 경찰력이 철수한 지난 학기에 일부 문제학생들이 흑백논리로 학원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폭력으로 교권에 도전, 다수학생을 위압했을 뿐 아니라 극히 일부에서는 교직원에게 폭행을 가하고 학교기물을 파괴하거나 도서관을 점거하는 등 우려할만한 과격행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다 전에없이「운동권」학생들은 하계방학에도 1학기경험을 바탕으로 대학간 또는 특정사회조직과 연계활동을 시도, 지난8월l5일에는 경인지구 13개 대학 1천2백여명이 연합집회를 갖는가하면 방학중 봉사활동·수련회등을 통해 의식화활동을 벌여온 점으로 미루어 이번 2학기 학원소요는 예년보다 1∼2개월 앞당겨 개학과 동시에 시작되고 더욱 과격한 행동을 보일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정부당국은 운동권학생들의 이같은 심상치않은 움직임에 따라 방학중에도 몇차례의 대책회의를 갖고 그동안 대처방안을 면밀히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했던 정부의 한관계자는 운동권 학생들 가운데일부는 외국 종교단체로 부터 상당한 자금지원을 받으면서 대학간은 물론 사회문제 계층과의 연계조직을 강화하는등 1학기의 경험을 토대로 2학기에 소요를 준비하고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당국이 이처럼 2학기 학원상황을 밝지 않게 보는 데는 지난l학기가 끝날 무렵부터 노출된 대학외적인「사건」들이 학원소요에 새로운 쟁점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겹친 것 같다. 정부는 지난 한 학기동안 지도휴학제폐지를 비롯, 해직교수 원적교 복직허용등 학내에서의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거의 수렴했고 학외에는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핫이슈」가 없어져 1학기말까지만해도 2학기를 자율화 정착의 시기로 전망해왔었다.
학원의 안정이 어둡게 보인다고해서 정부가 지금까지의 자율화조치를 철회 하는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자율에는 한계가 있고 방종과는 구별되는 「규범속의 자율」을 추구하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번조치와 관련, 지금까지 추진해온 자율화시책을 계속 지원하고 총·학장요청이 있을때를 제외하고는 공권력을 학원에 투입하는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학교자체의 통제력과 지도기능을 강화, 질서중시의 학원풍토를 조성하고 자율시책의 뿌리를 내리게 하겠다고 정책선회의 의도를 설명했다.
정부는 일단 자율화이후의 학원을, 소요와 혼란, 방종과 무질서의 상태로 규정, 이 같은 상태가 경찰력이란 공권력의 철수 후 학원내에서 이에 대치된 힘이 없이 공백상태가 되면서 조성된 것으로 판단하고 이에따라 대학의 학칙과 사회의 실정법으로 우선 그 공백상태를 메우려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과 대학인은 확고한 신념과 철학으로 모든 역량을 질서확립에 집중할것도 아울러 요구하고 있다.
대학의 학칙이나 사회의 실정법이 학원폭력행위를 추방하는 질서를 확립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자율화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근본적으로는 내실있는 교육으로 학업에 열중토록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학내에서는 교수들의 지도역량에 학원안정의 열쇠가 있다고 볼수있다.
권장관은『우리들 교육자는 자기직장에 가정과 같은 애착을 갖고 무한한 주인의식으로 모든 문제에 대처하지 않는한 우리가 바라는 학원의 자율화는 요원한 숙제로만 남게된다』고 표현했다.
문제는 정부가 자율화 1학기를 실험하면서 얼마만큼 교수를 비롯한 대학인물에게 주인의식을 갖도록 해왔느냐에 있다. 정부가 내 세우고 있는 주요 자율화시책들, 예컨대 제적학생 재입학이라든지 경찰병력철수나 해직교수원적교복직· 졸업정원제및 입시제도보완등에 교수들이 주인으로서의 발언권울 행사할 기회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학칙의 경우만해도 그렇다. 교수들이 자율에 맞는 학칙을 만들기 위해 밤을 새는 토론의 기회를 가져보고 그렇게 만들어진 학칙으로 모든 교수가 공감대를 갖고 학생들에게 학칙을 지키자고 지도하는 것과 어떤 내용이 왜 바뀌어지는지도 모르게 개정되는 학칙으로 학생을 지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학기 자율화를 위한 값진 진통을 겪으면서도 전체교수가 구체적으로 자율화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분위기조성이 되지못한 사실은 2학기대책과도 관련, 아쉬움을 남긴다. 광복이후 만성적 학원소요의 가장 두드러진 원인중의 하나가 교수들의 학생지도에 대한 신념부족이란 정부의 평가에 수긍한다면 그 같은 과정은 지금부터라도 신중히 검토돼야할 것 같다. 규범의 적용만으로 지성인 집단인 대학의 질서를 확립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권순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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