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정리 이제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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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부실 해외건설업체에 대한 정리방안이 하나씩 구체화되어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현실정에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고육지책이다. 이미 일은 저질러졌고 수습은 급하다.
1차로 지난달 경남기업이 (즈)대우의 위탁경영을 받기 시작했고 이번에 다시 남광토건과 (주)삼호가 각각 은행관리를 떠나 대림산업과 쌍룡종건의 위탁경영에 맡겨졌다.
3사 모두 「1년간의 위탁경영」 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두 그대로 「인수」 되는 것이다.
아직 시공중인 국내외공사·종업원·자산과 부채 등을 모두「위탁경영」을 맡은 회사가 떠맡는 것이다.
굳이 「위탁경영」의 형식을 취하는 것은 해외현장에서 계속 종전의 회사명으로 공사를 해 나갈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형식이야 어쨌든 부실해외건설업체가 생겨 더 이상 자력으로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가면 다른 건설업체에 맡겨 공사를 마무리 짓게한 후 발을 빼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과거 율산이 넘어 갔을 때, 신승기업이 부도를 냈을 때도 「위탁경영」은 아니었지만 각각 3개기업·5개 업이 따로따로 도산기업의 공사현장을 갈라맡아 마무리지었다.
지난번 명성사건의 여파로 공영토건이 부실화 됐을 때도 최원석 동아건설회장을 법정관리대리인으로 선임하는 형식을 통해 결국 동아건설이 공영토건을 모두 맡아갔다.
율산이나 신승 때 만해도 부실기업을 부도내고 공사현장을 다른 기업이 인수받아 마무리 짓는형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지금에 비하면 걸려있는 공사나 손해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부실의 수렁에 빠진 업체가 한둘도 아닌데다 부실의 규모도 예전과는 비교도 할수 없게 커져 부실기업 하나라도 율산이나 신승의 경우처럼 비교적 간단히 처리할 수 없게됐다.
이에 따라 최근의 부실해외건설은 은행관리를 거쳐 다른 기업의 「위탁경영」으로 넘어가는것이 거의 도식화되어버렸다.
해외건설업체가 적자가 난다고 하여 간단히 문을 닫고 손 털어 버릴 수 없는 것은 대외공신력문제에다. 은행의 공사보증·채권회수·수많은 종업원 처우문제 등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또 은행의 관리에도 한계가 있다. 건설공사의 특수성 때문에 은행의 경영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현장」을 잘 아는 건설회사가 관리를 맡을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조흥은행이 서일종건의 동남아 건설을 대리시공해서 2천만 달러의 흑자를 내겠다고 달려들였다가 1년도 채 안돼 적자를 보고 두 손을 들어 버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해외건설 문제는 최근 비슷한 지경에 처한 해운업체 정리방안과도 달리 드러내놓고 현황을 파악하여 대처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실제로 현재 추진되고 있는 해외건설 정리방안은 관련 정부부처의 강력한 「막후 조정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이 사실이다.
비록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부실해외건설에 대한 정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정부는 경남·남광·삼호 외에도 앞으로 「위탁경영」의 절차를 밟아 해외현장을 정리시킬 부실 건설업체를 이미 선정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고 또 3개 건설업체 정도는 같은 계열의 다른 업체에 통합시킬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금호건설은 그룹내의 사정에 따라 모 기업인 광주고속과의 합병을 이미 추진 중에 있다.
같은 그룹 내 계열사끼리의 통합은 문제가 간단하지만 타 기업에 의한 「위탁경영」은 앞으로도 걸리는 문제가 많다.
우선 부실을 맡아 공사를 끝내려면 은행의 자금지원이 불가피하고 은행부터가 자금사정이 최악인 상태라 결국 한은의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1차로 이달 초순께 각 주거래은행을 통해 전체적인 자금지원규모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고 최근 은행의 지급율을 1%포인트 내린 것이나 단자사들로 하여금 만기가 닥치는 부실건실업체의 어음을 계속 연장해주라고 지시한 것도 모두 해외건설 종합대책과 관련이 있다.
또 부실을 맡아 해결할 능력이 있는 기업은 지금까지의 예에서 보듯 대우·쌍룡·대림·동아건설 등 모두 대기업그룹이므로 대기업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어떻게든 분산시키겠다는 정부의 시책과 어긋나는 일이다.
이제서야 본격적인 수습이 시작된 해외건설은 결국 한은·각 은행· 관련업계 등을 비롯해 모든 국민이 다같이 그 부담을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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