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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철 죄목은 장성택의 ‘양봉음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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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엔 ‘유일영도체계 10대 원칙’이란 게 있다. 김일성 일가에 대한 주민들의 행동강령으로, 북한이 공표한 어떠한 법률보다 우선한다. 그 6조 5항의 내용은 이렇다. “당의 통일단결을 파괴하고 좀먹는 종파주의, 지방주의, 가족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당적 요소와 동상이몽(同床異夢), 양봉음위(陽奉陰違·앞에선 순종하고 뒤로는 딴 마음을 품는 것)하는 현상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해야 한다.”

 동상이몽과 양봉음위는 지난 2013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될 당시 적시한 20여 개 죄목 중 하나다. 국가정보원은 13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 사유에도 이 조항 위반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현영철의 경우 10대 원칙의 3조(김일성·김정일의 권위를 절대화한다)와 5조(김일성·김정일의 유훈과 당의 방침은 무조건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위반죄도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북한이 김정은 체제 출범 후 개정된 10대 원칙을 내세워 숙청을 단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정원은 이날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 변인선 전 총참모부 작전국장,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등 고위 인사들도 최근 숙청됐다고 밝혔다. 마원춘은 “순안공항을 김정은 지시대로 건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해 11월 경질돼 일가족과 함께 양강도 지역 농장원에 배치됐다고 한다. 변인선은 대외군사협력 문제와 관련한 김정은의 지시에 이견을 제시했다가 크게 질책을 받고 지난 1월 숙청됐다.

 모두 10대 원칙의 5조인 ‘무조건성의 원칙’에 저촉되는 행동이라고 한다. 한광상은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면서 최측근으로 활동해 오다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며 지난 3월 초 이후 공식석상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부터 4년간 북한에서 숙청으로 처형된 당·정·군 고위간부는 장성택 등을 포함해 70여 명에 달한다고 국정원은 전했다. ‘유일영도체계 10대 원칙’은 원래 1974년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으로 제정됐다. 39년 만인 지난 2013년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다.

 74년 마련된 10대 원칙은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한 것이지만 2013년 개정되면서 ‘김일성-김정일주의’(1조)가 포함됐다. 10조엔 ‘우리 당과 혁명의 명맥을 백두의 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가며’라고 명시해 세습체계를 정당화했다. 장성택 처형에 쓰인 6조 5항도 2013년 개정 때 추가된 문구다. 이외에 개정된 10대 원칙 서문에 ‘핵무력’을 명시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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