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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권력의 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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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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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은 리더십 모델이다. 올해가 그의 죽음 150주년이다. 미국에서 추모 열기가 이어진다. 그는 전쟁과 함께한 대통령이다. 남북전쟁 4년이 대통령 재임기간이다. 그의 업적은 위대하다. 국가 재통합과 노예제 폐지다. 그것은 전쟁 승리의 성과다.

 링컨은 종전 직후 암살당했다(1865년 4월 15일, 56세). 남군 항복 6일 뒤다. 수도 워싱턴 아래 버지니아주의 애포머톡스(Appomattox)-. 그곳에서 전쟁이 끝났다. 항복 조인식 장소다.

 애포머톡스는 상식파괴다. 그곳엔 종전기념비가 없다. 전적비, 추모비도 세우지 않았다. 승자는 북군 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Grant).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Lee)는 패장이다. 그들의 동상도 없다. 추모비로 덮인 게티즈버그와 다르다. 작은 안내판이 관광객을 맞는다. “이곳에서…리와 그랜트, 그들의 지친 군대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드라마(One of the Great Dramas)의 하나를 연출했다.”

 전쟁은 남부의 연방 이탈, 분단으로 시작했다. 링컨은 그것을 국가 반역으로 규정했다. 그 후 내전은 유혈과 참상이었다. 군인 62만 명의 죽음. 국가 재앙이다. 그 숫자는 20세기 미군 전사자(1차+2차 세계대전+한국전+베트남전)의 합계보다 많다.

  안내판은 승자의 환호를 배제했다. 패자의 절망도 담지 않았다. 비극의 감상, 교훈도 없다. 반역에 대한 질타도 없다. 묵직한 교훈도 없다. ‘미국 역사의 위대한 드라마’로만 적혀 있다. 미국이 다시 합친 곳으로 기억된다. 그 간결함은 링컨 드라마를 절정에 올린다.

 그 드라마의 연출과 주연은 링컨이다. 드라마는 지도자 혼자 펼칠 수 없다. 조연의 기량은 완성도를 높인다. 조연은 지도자의 비밀병기다. 링컨 주변에 책사(策士)와 장군들이 모였다. 그 참모들은 링컨을 지혜롭게 보좌했다. 링컨의 비전을 다듬었다. 인재를 알아보는 링컨의 안목은 특출났다.

 링컨은 냉혹했다. 그는 어설픈 평화를 거부했다. 북군 장군들은 그 신념을 무자비하게 실천했다. 그랜트는 도살적 소모전으로 나갔다. 남부 정부는 항전을 포기했다. 그 순간 링컨 드라마의 대담한 반전(反轉)이 일어난다. 용서의 사면 조치다. 링컨은 반역을 단죄하지 않았다. 용기는 너그러움을 생산한다. 그랜트는 그것을 충실히 반영한다. 항복한 리 장군이 법정에 서지 않게 했다. 남북전쟁의 의미는 재구성됐다. 국가 통합의 동력으로 바뀐다. 애포머톡스의 절제는 링컨의 의지를 드러낸다.

 전범(戰犯) 없는 미국의 남북전쟁-. 그 파격은 분단 극복의 롤 모델이다. 북한 다루기는 다양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북한은 핵무기 시위에 몰두한다. 우리의 군사적 응징 태세는 엄밀해야 한다.

 평양에 숙청의 피바람이 이어진다. 김정은의 체제 관리 수단은 공포다. 북한 엘리트층 내부는 긴박하다. 그들에게 애포머톡스식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포용의 신호다. 통일 장래의 불안감을 없애줘야 한다. 남쪽에 기대려는 의식을 주입해야 한다. 한반도는 역사적 감수성의 무대다. 그 역동성에 책사들은 도전한다.

 링컨은 전쟁 중 노예해방 선언을 했다. 그 조치는 미흡했다. 헌법에 노예제 폐지 조항을 넣어야 한다. 그의 결단력이 작동했다. 수정헌법 13조 프로젝트다. 헌법 수정의 하원 의결 정족수는 3분의 2. 그의 공화당은 다수당이다. 하지만 20표가 부족하다. 야당을 끌어들여야 했다. 링컨의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은 발휘된다. 여기에 치밀한 조연이 필요하다. 순발력 있는 악역이 있어야 했다.

 국무장관 윌리엄 슈어드(Seward)가 그 역할을 맡았다. 슈어드는 야당 대책에 골몰했다. 회유와 압박의 밀실정치에 나섰다. 위대함은 고귀하게 성취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업적은 진흙탕에서 단련된다. 링컨의 성취 방식이다.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은 그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링컨과 슈어드의 팀플레이는 장애물을 돌파했다. 노예폐지안은 통과됐다. 슈어드의 보좌는 탁월했다. 그의 직언과 쓴소리는 권력의 균형감각을 넣었다.

 하원 통과 두 달여 뒤 링컨은 숨졌다. 부통령 앤드루 존슨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슈어드는 국무장관을 계속한다. 그는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샀다. 비용 720만 달러. 거저주웠다. ‘슈어드의 바보짓(folly)’-. 얼음덩어리를 샀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알래스카의 가치는 엄청났다. 링컨 신화는 그와 조연들의 작품이다.

 지도자의 성공 조건은 시대를 초월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 사례를 원용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4대 개혁은 곡절과 파란이다. 청와대의 야당 대책은 서툴다. 거기에 게으름이 겹쳐 있다. 여당과의 정책조율도 엉성하다. 외치의 보좌는 수세적이다. 청와대의 누가 남북관계의 그랜드 디자인을 짜고 있나. 대통령의 사람들은 많다. 조연다운 참모는 찾기 힘들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