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색깔 엉성한 묘사(동화책 삽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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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그림은 어린이독서의 최초의 문』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아동도서의 삽화가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최근 아동문학가 이상배씨는 우리 아동도서의 삽화가 갖는 심각한 문제점을 제기해 주목을 끌었다(『한국아동문학』10집).
이씨는 아동도서엔 풍부한 색은 없어도 이야기를 충분히 전해주는 일러스트레이션의 묘사가 있어야하나 우리 아동도서삽화는 반대로 색감은 풍부하지만 이야기를 충분히 이끌어가는 묘사가 결여돼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어린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비구상화의 추상적인 화법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벽에 부딪치게 한다는 것.
이는 대부분의 삽화가들이 정밀묘사 보다는 막연히 글의 내용에 맞추어 상상력을 동원한 감각적 측면에서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미 이야기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개미들의 생활모습을 관찰하고 그림에서도 일개미와 여왕개미의 실제 크기를 제대로 묘사하는 철저한 현장 스케치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어린이들은 짙고 풍부한 색깔만을 좋아하지 않으며 단색이라도 이야기의 세계가 훌륭히 묘사돼 있다면 색의 세계까지도 상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아동도서의 출판경향은 그림동화책으로서의 기능을 갖춰가고 있다. 「읽는 것과 보는 것」의 양면성을 동일하게 추구하고 있다. 아동도서의 60%를 차지하는 저학년용 도서에서 이 현상은 더욱 뚜렷해 페이지마다 삽화를 넣고 컬러화 돼가는 추세다.·
여기서 훌륭한 삽화는 언어의 장벽을 초월, 어린이의 마음에 직접 파고 들어가 감동을 주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림이 이야기의 내용과 깊은 곳에서 일치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재미있는 책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데, 그 반복의 욕구는 그림에서 새로운 경험을, 글에선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바로 「내용과 그림의 일치」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러시아의 삽화가 「라초」는 『바시키르 민화집』에서 최초로 동물에게 인간의 옷을 입히는 수법을 도입했었다. 이는 동물화의 순수성을 고집하는 사람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받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기법이 됐다. 이때 「라초」는 『어린 독자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애정을 기울일 것』과 『그림이 들어가는 문학작품을 존중할 것』을 당부한 일이 있다.
아무튼 우리 삽화가들은 내용을 몇 번이고 읽어 완전히 파악하고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이미지를 보양한 후 작업에 들어가는 노력이 크게 요구된다고 이씨는 주장했다.
그는 어른의 시대는 길지만 어린이의 시기는 짧고 그만큼 감수성이 예민해 어린이들이 책에서 받는 영향에 무관심할 수 없다며, 아동도서 삽화에서 ▲시간적 여유없이 스케치 중심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되는 점 ▲창작기법이 아닌 모방의 문제 ▲외국도서의 무분별한 복사 ▲출판사의 요구에 따른 싼값의 일러스트레이션 등이 하루빨리 해결돼야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아동삽화의 미술대 정규교육문제 또한 시급한 과제로 대두됐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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