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부터「거물」행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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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중앙상임위원·대구상공회의소 상공의원·대구시서구청 자문위원·명예경찰서장·S여자중고재단이사장·한국제지협회이사장·유양산업대표….
지난해 말까지 이주하씨가 갖고있던 직함이다. 이씨가 대구 지역에 거물로 등장한 것은 80년대 들면서부터『막강한 숨은 실력자』『도지사도 굽신거린다더라』소문이 퍼지면서부터 이씨도 어느 때보다 점잖아졌다.
관공서·단체 등의 공식·비공식 모임에서 자주 모습을 나타냈고 이웃들에게도 잘해 동네 대소사에 많은 금액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나무젓가락 원료인 포플러 값이 급등하면서 많은 자금이 필요해 은행대출, 수표표·어음발행, 사채 등을 마구 끌어들인 것이 화근이 됐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82년 S여중·고를 10여억원에 인수한 것도 자금압박의 주요인이 됐다. 이자는 또 다른 사채를 요구하게 돼 부도직전엔 이자액만 월평균 5천만원을 넘었다는 것.
돈이 급해진 이씨는 닥치는대로 돈을 끌어 모았다. 이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에게도 문제는 많다. 이씨에게 자금을 빌려주지 못해 안달인 사람도 많았다고 한 측근은 귀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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