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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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혼약한 딸에게』-다 큰 자녀가 비로소 제 인생을 찾아 지니는 일, 그러한 출발점이 다름아닌 혼사다. 이 시조를 대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우리의 어머니들이 늘 품어온 지극한 모성애, 그 본능적인 마음가짐이다. <곡식은 남의 논밭 곡식이 탐스러워 보이고, 자식은 내집 자식들이 알곡스러워 보인다>는 속담도 자식 둔 부모마음, 그 본능을 숨김없이 내비친 것이리라.
이 시조에 나타난 (한정토)는, 열락 감도는 행복한 가정을 뜻하는 것이겠고, 딸이 그곳 (연꽂이 되어/느을 늘 향그럽거라)한 마무리 또한 일찍부터 지녀온 우리 어버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무리없이 잘 읽히는 시조다.
『여름 나들이』-이를테면, 직장에 얽매였다가 방학 혹은 휴가를 맞아 일시적이나마 만끽하는 해방감, 그처럼 후련한 심정을 비유로 끌면서 나타낸 시조다.
가로수의 그늘이 출렁이는 물결로 잡혔는가 하면, 그 위에 뜬 한 척, 돛단배로 자신의 모습을 놓았다. 그처럼 홀가분한 해방감은 오랏줄로 여겨지던 직장생활의 테두리가 잠시나마 엿녹듯 녹아서 얻은 해방감이며, 좋은 착상이다.
『안개 낀 계곡』과『땅거미』와 『네 모습』의 경우는 각각 한 수의 시조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터득한 듯하나 말 다루는 솜씨를 더욱 길러야 하겠다. 말 안되는 구석을 말되도록 고쳐서 낸다.
시조를 잘 짓는 특별한 비법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내부로부터 충격적으로 일어나는 절실함이 앞서야 하겠고, 글자수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쓰고자 한대로 다 써야 할 일이며, 그 다음, 뜻 좋고 가락 좋은 말들을 차근차근 연결하여 통일된 초·중·종장으로 가꾸어야 할 일이다. 두고두고 욾조리는 일에다 자꾸 고쳐보는 일을 거듭해야 하며, 그러한 되풀이를 길들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성숙된 단계를 딛게 된다. 문제는 남다른 애착이고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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