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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5000mm 비오는 곳, 한라산 동남부

중앙일보

입력

지난 11일~12일 제주도 한라산 진달래밭(해발1500m)에 446㎜ 폭우가 내렸다. 제6호 태풍 ‘노을’이 몰고 온 많은 양의 수증기 때문이다. 올들어 이달 12일까지 이곳에 내린 비는 2159.5㎜로 벌써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 1300㎜, 세계 연평균 강수량 880㎜을 훌쩍 뛰어넘었다.

제주기상청에 따르면 진달래밭은 우리나라 자동기상관측시스템(AWS)이 있는 곳 중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다. 최근 10년(2005~2014년)간 진달래밭에는 한해 평균 5223.5㎜의 비가 내렸다.

제주기상청 송문호 예보관은 “제주 남쪽 태평양과 중국 양쯔강 지역 등에서 올라오는 고온다습한 기류가 한라산과 충돌, 상승기류를 만들어 산의 동남쪽 일대인 진달래밭에 일순간 많은 비가 내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10년간 비가 두 번째로 많이 온 곳도 한라산의 다른 지역이다. 1700m에 위치한 윗세오름(5036.2㎜)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다 하루 강수량 기록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8월 2일 태풍 나크리가 내습했을 땐 하루 동안 1182㎜의 비가 내렸다. 윗세오름에 자동기상관측시스템이 구축된 2003년 이후 최고치다. 이 태풍 기간(8월1일~3일) 이곳에 1549㎜의 비가 내렸는데 이는 평년(1981~2010년)의 서울시 1년치 강수량(1450.5㎜)보다 많은 양이다.

이 수치는 세계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인도 체라푼지(Cherrapunji) 지역의 기록과도 맞먹는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체라푼지는 지난 1995년 6월 15~16일 48시간 동안 2493㎜의 비가 내려 48시간 강수량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단순 계산으로 하루 1246.5㎜가 온 셈이라 윗세오름의 1182㎜와 큰 차이가 없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지만 제주도는 물 재해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섬 전체가 현무암 등 구멍이 많은 화산암으로 이뤄져 투수성이 높기 때문이다. 빗물의 40% 내외가 지표면 밑으로 스며들어 제주도민들의 식수·생활용수인 지하수가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중국자본들의 잇따른 중산간 리조트 난개발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하수 오염 우려 때문이다.

‘중산간’은 한라산 해발 200~600m의 지역이다. 이곳은 빗물을 흡수해 주민들이 식수·생활용수로 쓰는 지하수를 공급하는 기능을 한다. 2016년까지 개발 될 제주 중산간은 서울 여의도와 비슷한 약 300만㎡(약 90만 평)다. 리조트 공사 때와 완공 뒤 흘러나오는 하수가 지하수를 오염시키면 제주도민은 물론 먹는샘물을 마시는 사람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중산간 개발로 물이 내려오는 하천로들이 차단되는 것도 문제다. 이 하천들은 바다까지 이어져 수해를 막아준다. 물길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으면 태풍 등이 오면 피해가 예상된다. 제주발전연구원 박원배 수자원정책 선임연구위원은 “저류지 12곳이 한라산으로부터 내려오는 빗물 148만t의 저장능력을 갖췄지만 수퍼태풍 등을 대비하기 위해선 재해예방차원의 빗물관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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