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부활한 미 내셔널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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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은 LA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미국인의 애국심이 부활했음을 선언했고 소련은 이 행사를 보이코트함으로써 미국의 새로운 자신감과 경합함에 있어서 희생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천명했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에서는 두 초강대국 관계를 조건 지우는 요소들이 극적으로 드러났다. 올림픽이 확대시켜 보여준 메시지는 미국이 이니셔티브를 취하지 않는 한 양국간의 관계전망은 황량할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LA에서는 미국의 내셔널리즘을 드러내 보인 징후들이 무한히 나타났다. 또 이 행사를 보도한 미국 언론의 자세는 오만한 자기도취에 이를 정도였다.
타임지는 올림픽 기사제목을 『영광스런 할렐루야!』라고 달았고 한 연쇄음식점은,『미국이 승리할때 당신도 승리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사실 미국인들의 자기도취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식민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면서 단지 그 강도만 달라져 왔을 뿐이다.
요즘 나타나고 있는 미국인들의 자기도취는 월남전 워터게이트 및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점철된 10년간의 저조했던 시대의 끝에 오고있는 것이다.
「카터」가 『국가적 병폐』가 만연되고 있다고 말했을 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공감했었다. 그런데 이제는「레이건」 대통령이 미국은『빛나는 도시』 라고 찬양하게 되었다.
미국인의 애국심부활은 정당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월남전 추모기념회에는 각계각층의 미국인이 몰려들었고 샌프란시스코의 민주당전당대회는 미국기의 물결 속에 막을 내렸다.
그런 애국의 물결을 선도한 것은 「레이건」이었다. 그는 백악관에 들어선 첫 날부터 군비증강을 주장했고 세계의 미국이익을 강력히 주장했다.
소련지도자들은 이런 현상을 허장성세라고 일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반대로 미국인의 애국심을 사실 이상으로 과장해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미국인의 심리적 회복세가 갖는 당연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LA올림픽 불참결정이 그걸 잘 말해준다.
소련이 이번 올림픽에 참가했더라면 수영· 역도· 육상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를 올렸을 것이다. 동독선수들은 여자종목에서 휩쓸었을 것이고 쿠바는 권투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렸을 것이다.
세계 어느 지역에서건 올림픽에서의 승리를 찬양하는 법이기 때문에 그런 결과는 소련의 입장에 유리한 효과를 가져다 줬을 것이다.
소련은 올림픽을 보이코트함으로써 이상과 같은 이득을 잃은 외에도 또 다른 희생을 치렀다. 중공과 루마니아가 참가함으로써 소련과의 불화를 두드러지게 보여준 외에 제3세계 국가들이 거의 소련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초강대국을 자처하는 소련의 꼴을 우습게 만들었다.
소련이 그런 댓가를 치르면서까지 올림픽에 불참한 이유는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
소련이 최근 자주의 비무장화를 논의하기 위해 빈에서 회담을 갖자고 제의해옴으로써 몇 가지 가설은 무너져버렸다.
소련의 이 제의는 크렘린내부의 권력투쟁이 소련의 정책 결정 메커니즘을 마비시킬 정도로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다. 이 제의는 또 「레이건」의 재선을 도울 수 있는 시기에 「레이건」 행정부와 대화를 갖는 것을 그들이 크게 문제삼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소련이 원치 않는 것은 미국의 내셔널리즘이 부활하는 과정에 가시적인 들러리가 되는 것이다.
만약 소련선수들이 LA에 와왔더라면 중공과 루마니아선수들이 그랬듯이 경기장을 휩쓴 희열의 분위기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들도 경쟁자인 미국선수들을 얼싸안았을 것이고 북경에서는 관중들이 환호했을 것이다.
그러나 크렘린은 미국과 소련인들이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모습을 소련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소련 지도자들은 미국의 도전을 암울한 표현으로 경고하고 있으며 모스크바의 언론들은 「레이건」을 「히틀러」에 비유하고 국민들에게는 조국을 위해 희생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LA에서는 테러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거짓보도가 매일 나가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소련이 미국과의 관계를 냉각상태에 방치해 두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주의 비무장화 문제처럼 그들의 이익이 직접 걸려있지 않는 한 소련은 미국의 자신감에 부응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미 소 관계가 개선되려면 이니셔티브는 미국 쪽에서 나와야 될 것 같다. 올림픽이 갖는 강대국관계의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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