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데커의 3000m 불발 레이스|미-영 논쟁 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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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LA올림픽 최대이벤트 중의 하나로 관심의 표적이 되었던 육상여자 3천m 경기가 뜻밖의 사고로 얼룩지면서 유례없는 논쟁 속에 휘말렸다.
세기의 라이벌로 지목되었던 세계챔피언 「메리·데커」(미국)와 맨발의 18세 소녀 「졸라·버드」(영국)는 불운을 씹으며 울음보를 터뜨렸고 금메달의 영예도 루마니아의 「푸이카」(8분35초96)에 돌아갔다.
사고는 골인을 약 1천3백m 남겨둔 네 바퀴째 레이스에서 일어났다. 선두를 달리던 「버드」를 제치려는 「데커」는 1번 레인과 필드 사이를 비집으면서 「버드」와 수 차례 팔꿈치 싸움을 벌였고 곧이어 둘의 발이 순간적으로 스치면서 「데커」는 필드 쪽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데커」는 넘어지기 직전「버드」의 맨발 뒤꿈치를 스파이커로 긁었고 「버드」가 그 충격으로 스텝이 불규칙적으로 흐뜨러지면서 결과적으로 잔뜩 스피드를 올리던 「데커」의 페이스를 방해한 것이 사고의 결과이자 원인이었다.
「데커」는 물론 도중 기권이며 「버드」도 발뒤꿈치의 상처에다 9만여 미국 관중의 야유가 주는 심리적인 혼란이 겹쳐 마지막 바퀴에서 크게 뒤져 7위(8분48초80)에 그쳤다. 미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모으는 「데커」는 넘어지면서 엉덩이에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벼운 상처이며 「데커」는 그 고통보다 오히려 금메달을 놓친 분통으로 울부짖었다. 레이스 후 「버드」도 울어 눈이 벌개져 있었다.
트랙의 심판들도 「버드」에 대해 레이스 방해를 했다는 이유로 실격을 선언했다. 그러나 영국 측의 이의제기로 소청위원회가 비디오필름을 통해 검토, 「버드」에 잘못이 없다고 판정했다.
그럼에도 「아메리카의 사랑」이라고 「데커」를 치켜세우는 미국 매스컴은 연일 이문제로 떠들썩하다.
ABC-TV는 11일 「버드」가 세 차례 「데커」의 왼발을 걸어 세 번째에 넘어지게 했다며 여러 차례 녹화필름을 방영했다. 이 녹화필름은 「버드」가 왼발을 비정상적으로 왼쪽으로 내미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카메라 앵글 때문에 그렇게 잘못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버드」측의 주장이다.
어쨌든 이미 일은 끝났다. 관심은 이들의 재대결로 모아지고 있다. 오는 22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리는 국제육상대회에서 다시 맞서보라는 것이 국제육상계의 기대다. 【LA=올림픽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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