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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영월 주천 섶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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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을 맞은 아홉 살 꼬맹이가 한달음에 외가댁으로 달려갑니다. 막둥이 외삼촌을 졸라 산토끼도 잡고 장독만 한 눈사람도 만들 요량입니다. 마음이 너무 앞선 탓일까요. 사립문으로 이어진 나무다리에 걸려 그만 무릎이 깨졌습니다. 생채기 때문에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닙니다. 큰 마을장에 가느라 텅 빈 외가댁이 서러웠습니다.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평창강을 가로질러 섶다리가 서있습니다. 강을 가로질러 다릿발을 세우고 통나무와 풋가지를 얼기설기 얹은 우리 전통 다리입니다. 새마을운동으로 시멘트 다리가 놓인 뒤, 한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다리를 마을 사람들이 되살려 놓았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밤나무가 많은 밤뒤마을과, 다리가 없다는 데서 이름을 얻은 미다리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다리를 놓습니다. 여름장마에 떠내려가기 십상이라 해마다 다시 놓아야 하는 수고가 따릅니다만, 겨울 강이 얼면 나룻배를 띄울 수 없는 강마을을 잇고 사람의 마음을 이어줍니다. 한 해가 저무는 세밑, 판운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나 봅니다. 오래전 아홉 살 철부지의 아련한 추억이 섶다리를 건너옵니다.

새벽 어스름에 염소를 이끌고 보따리를 머리에 인 아낙이 섶다리를 건너는 정겨운 사진이 사진전에 곧잘 등장합니다. 한동안 사진 속의 할머니는 이곳의 전속 모델로 부업을 했다는 우스개 귀띔도 있습니다. 해뜨기 전, 얼음장 밑을 흐르다 여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강물은 파스텔 색을 띱니다. 여명의 붉은빛과 파란 하늘빛이 어우러져 물든 까닭입니다. 섶다리의 정취를 더해주는 순간의 색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핵심입니다. < HASSELBLAD X-pan 45mm F22 2초 Iso 50>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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