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세습체제의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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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평양당국은 김일성의 장남인 올해 42세의 김정일이 김일성의 유일한 후계자로 세계적인 공인을 받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정일 승계문제는 오래전부터 추진되어 이미 그는 정치국장·군사위원·중앙위 비서등 북한권력구조의 핵심부를 모두 경직, 명실상부한 제2인자가 돼있어 우리에겐 별로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정통이론에서는 혈통을 중심으로 권력을 승계하는 전제군주제를 역사상 최악의 정치형태로 규정하고 있고 현재의 모든 집권 공산당들은 이 이론을 신봉해 왔다.
그 때문에 북한안에서는 물론 공산권 안에서도 김정일 승계에 심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김일성 집단은 안으로는 대규모 숙청을 치르고 밖으로는 애걸조의 호소외교를 통해 이문제를 해결지은 듯하다.
문제는 김정일의 권력승계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더욱 위협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김정일 체제는 금일성의 전근대적인 족벌정치(nepotism)의 계속을 의미한다.
더구나 별다른 실속없는 인물이 최고 지도자가 된다는 점에서 김일성식 우상화의 반복도 불가피하다.
이것은 지금까지 평양 집단이 범해온 대내적인 우민화 지배와 대외적인 폐쇄정책의 지속이 또한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김정일이 평양의 강자로 등장하여 취한 일련의 대내외 조치를 볼때 그는 모험적인 군사노선을 선호하는 광포한 강경파임이 틀림없다고 하겠다.
76년의 판문점 도끼만행을 비롯하여 아웅산 테러 등 북한에 의한 일련의 테러행위가 모두 김정일의 직접 지휘로 일어난 사건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김정일을 떠받치고 있는 평양의 강경파는 국방상 오진자를 비롯하여 김중린·임춘추·양형섭 등이다.
이들은 지금 당과 군·내각에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경제노선을 추구하려는 실용주의 온건파를 압도하는 형편이다.
현재는 온건노선을 지향하려는 연로한 김일성이 이 양파를 조정해가면서 온건파의 대외적인 개방주의와 경제건설을 추진하되 정치권력은 김정일 일파의 강경파에 넘기려는 것이 지금의 평양의 정계실상이다.
북한은 김정일 승계를 발표하면서도 그 날짜는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김일성은 동구방문중 내년이면 김정일이 북한의 주석이 돼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바 있다.
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승계는 임박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승계를 계기로 한반도는 또 한차례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일말의 불안을 느끼게 된다.
후견자로 머물러 있게 될 김일성이 어느 정도의 견제력을 발휘할는지는 두고볼 일이다.
우리는 지금 북한이 발돋움하고 있는 중공형의 개방적 경제건설에 임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호전적·모험적인 김정일 체제에서는 그것만이 그들의 강경노선을 다소나마 억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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