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밀월」의 배경과 관계국 반응|한계 있어도 동·서독 급속 접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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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독일통일의 모험적 꿈」 「통일명목 밑의 독일팽창주의 부활」 「복수주의 망령의 부활」 등등 센세이셔널한 문구가 최근의 동서독관계를 두고 동구와 서구 나라의 신문·잡지에 계속 등장하고 있다.
서독이 최근 동독에 대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9억5천만마르크(3억3천만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동독이 양독간의 인적 교류제한을 완화하는 한편 「호네커」 동독공산당당수가 9월말 서독을 방문할 것이 확실해지면서 이런 표현이 부쩍 눈에 띄고 있다.
중거리 핵 미사일의 유럽배치문제를 두고 동서관계, 특히 미소간의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유독 동서독만이 「밀월」 단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독일과의 여러 차례 분쟁을 통해 피해를 보았던 몇몇 주변국가들은 잠재 의식적으로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이 양독관계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고 있다.
특히 소련이 양독간의 협조관계를 몹시 경계하는데는 우선 표면적으로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서독이나 동독이 다같이 논란의 대상이 된 미소의 중거리 핵미사일이 배치된 나라이지만 이를 달가와 하지 않는 것은 모두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미소의 핵 배치 정책을 따르고는 있지만 자기네 나라가 미소군비 경쟁의 「격전지」가 돼있는데 대해 본능적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양독관계에 관한 한 동서독 모두 통일국가의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징후는 찾을 수 없다. 주변국가들의 전통적인 불안감이 최근의 「이상」 접근을 그렇게 볼 수 있는 측면을 제공했을 따름이다.
「독일정책」에 관한 서독정부의 기본입장은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의 분단된 양독 국민의 고통완화』에 있다. 궁극적으로는 서독정부의 이런 정책이 언젠가 통일에 대비한 단계적인 작업으로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까운 장래에 동서독의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나 국민들은 없다.
같은 민족이라는 입장에서 평화 공존하면서 서로 협조하는 두개의 독일국가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재 독일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동독의 경우 더욱 완고한 편이다. 서독이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인적교류를 포함한 양독 교류의 폭을 넓히도록 요구할 때마다 동독은 그것이 자기네 「내정문제」에 간섭하는 내용이라고 보일 때면 완강한 반발을 보여왔다.
그러면서도 동독이 최근 서독과의 관계를 밀착시키고 있는 것은 경제적인데서 그 주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동구블록 국가 중 동독은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되고 부유한 국가다.
이러한 부를 유지하고 동구에서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기 위해 동독은 서독으로부터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
상호 관세가 없는 「내독교역」을 통해 동독은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다. 관세 없이 서방국가, 특히 EEC국가에 대해 서독을 통한 수출효과를 이 「내독교역」에서 동독은 얻고 있다. 이 교역이 동독 대외무역의 40%를 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독은 서구국가들과의 경제교류를 통해 2백40억마르크(86억달러)에 이르는 외채를 안고 있다. 이중 45%인 1백35억마르크(원금 1백10억, 금리 25억)를 금년부터 1년 안에 갚게돼 있다. 그러나 동독이 대서방 교역을 통해 벌 수 있는 서방통화는 1년에 70억마르크 밖에 되지 않아 외국 빚을 갚으려면 또 다시 외채를 얻는 수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서독으로부터 돈을 얻어 쓸 수 있어야 다른 나라 은행으로부터도 호응을 얻을 수 있는 형편이다.
「호네커」로서는 따라서 다소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정치·경제적으로 서독과의 협조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도록 돼있다.
지난 40년간 동구에서 시행된 소련식 공산주의의 실패는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들로 하여금 자기네 살길을 찾도록 하고 있다.
새롭게 훈련된 경제엘리트들이 등장하여 민족주의를 추구, 독자적 노선을 추구하면서 소련의 통제가 약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한 「집안단속」으로서 다른 국가들이 더 이상 동독과 같은 예를 따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소련은 독일의 통일에 대한공포를 일깨우고 복수주의를 경고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본=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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