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버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리처드·버튼」이 명우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배우 「엘리자베드·테일러」와 「세계를 들끓게 한 사랑」을 한 것으로 그는 더 유명해졌다.
1960년에 촬영을 시작한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공연 중 「리즈」와 사랑에 빠져 64년 4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었다.
그러나 그 결혼이 정말 오래 갈까 하는 팬들의 의혹을 증명이나 하듯 74년 드디어 그들이 결별했을 때 세상은 또 한번 떠들썩했었다.
「버튼」의 연구가들은 그의 일생을 지배하는 「13년간의 사이클」이라는 마의 주기를 상기시킨다.
49년 역시 영화배우였던 「시빌·윌리엄즈」와 결혼했던 그는 13년만인 63년에 이혼하고, 또 「리즈」와도 13년만에 이혼을 했기 때문.
그러나 징크스는 그걸로 끝났다. 그는 그의 만년을 83년에 다섯 번 째 결혼한 BBC방송 조연출 「헤이즈」양과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가난한 광부의 12번째 아들로 세상에 태어났다는 자체가 연극 같다.
어머니는 그의 동생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얼마만한 험한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걸 그는 어렸을 때 터득했다.
20대 1의 경쟁을 뚫고 그래머 스쿨에 들어간 것도 그랬다.
거기서 그는 연극주임이었던 「필립·버튼」의 눈에 띄어 그의 집에서 자랐다. 「리처드·젱킨즈」란 본명 대신 「버튼」이란 예명을 쓰게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가 연극에 특히 눈을 뜬것은 옥스퍼드대학 엑세터 칼리지에서 영이문학을 전공할 때였다.
대학을 공군장학금으로 다녔기 때문에 그는 공군에 복무했다. 그는 공군 럭비팀의 사나운 윙 플레이어였다.
제대 후 돌아온 무대에서 그는 셰익스피어 극에 두각을 나타냈다. 「로런스·올리비에」경의 후계자로 각광을 받은 것은 그때였다.
사나운 술 주정꾼의 명성은 그 후에 얻었다. 「리즈」와 생활할 때 그는 하루 평균 스카치 위스키 1병을 마셔댔다. 「리즈」 또한 술꾼이었다.
손님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술병을 집어던지던 고약한 주정은 악명 높은 것이었다. 술을 끊기 위해 샌타 모니카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다.
간경변으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생활태도를 바꾸었다.』고 술회한 적도 있다.
그의 성격이 만년에 훨씬 너그러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배우로 성공했지만 그의 원래 꿈은 「빌리·그레이엄」 같은 전도사가 되는 것이었다고 술회한 적도 있다. 위대한 영국 배우의 일생은 연극처럼 비장하게 막을 내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