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숙성의 명인' 이용 한국델몬트 이천물류센터 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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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델몬트 이천물류센터의 이용(36.사진) 소장은 '바나나 숙성' 책임자다. 필리핀을 출발해 마산항에서 이천으로 옮겨진 바나나를 시장에 나갈 때까지 적당히 익히는 게 그의 임무다.

연둣빛 바나나를 들여와 소비자들이 먹을 때 쯤 가장 맛있는 상태가 되도록 익힌다. 매일 바나나 13㎏들이 7000 상자 가량이 이천물류센터에 들어온후 그의 손아래서 5일 정도 숙성된다.

직원들에 따르면 이 소장은 숙성고에 들어서 냄새만 맡고도 숙성정도를 판가름한다. 숙성 경력 2년인 물류센터 성호윤(31) 기사는 "어떻게 냄새만으로 그걸 아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두른다.

이 소장은 델몬트에서 과일 영업을 하다 2002년초 이천물류센터 소장으로 왔다. 숙성 경력이 이제 3년이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인데도 직원들이 탄복하는 실력을 갖췄다.

이 소장은 "책임감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천물류센터에는 바나나 약 2000상자 정도가 쌓인 숙성고 20개가 있다. 숙성고 하나가 잘못되면 수천만원의 손해를 본다. 그래서 부임 초기부터 온 신경을 바나나에 집중했고, 그러다보니 바나나 판별력이 유난히 예민해졌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오감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전자식 온도계 등 측정 기구를 들고 숙성고에 수시로 들어가 바나나 과육의 온도 등을 정밀 측정해 익어가는 정도를 가늠한다.

이 소장은 "웰빙 바람이 불며 바나나 숙성법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칼로리를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아져 달지 않도록 전보다 덜 익힌다고 한다. 특히 백화점 고객들이 덜 단 바나나를 찾는다는 것이다. 반면 학교 급식용은 많이 익혀 내보낸다. 일반 판매용은 보통 아침에 숙성고에서 나가면 그 다음날 오후쯤 소비자가 먹지만, 급식용은 아침에 나간 것을 점심에 먹어 추가로 익을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또 학생들이 어른보다 단 맛을 좋아한다는 이유도 있다.

소비자 계층에 따라 바나나 숙성도를 달리하는 것이다. 바나나를 먹어보는 것도 이 소장의 주요 일이다. 숙성고에서 나가는 바나나들이 알맞게 익었는지 최종 시험을 하는 과정이다. 조금씩 떼어먹는 것이지만 그래도 많을 때는 하루에 10개분량을 먹는다.

이 소장은 "하루도 맛 테스트를 걸러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천=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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