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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 자리 박찬 주승용 … “연분홍 치마~” 노래한 유승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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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주승용 최고위원이 8일 오전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한 뒤 회의실에서 퇴장하고 있다. 만류하는 문재인 대표의 손까지 뿌리쳤다. 왼쪽부터 주 최고위원, 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정청래 최고위원. [뉴시스, YTN 화면 캡쳐]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의 국회판. 8일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풍경이 한마디로 그랬다. 문재인 대표가 “관록의 4선 의원이시다. 독립운동가(우당 이회영 선생)의 후예답게 국민의 편에서 국회를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신임 이종걸 원내대표를 소개하고, 이 원내대표가 “남북전쟁으로 갈라진 미국을 하나로 만든 링컨을 기억하자. 가장 중요한 원칙은 통합”이라고 화답할 때만 해도 이후 벌어진 상황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비노계 주승용 최고위원이 발언에 나서면서 분란이 시작됐다. 그는 4·29 재·보선 참패 다음날부터 문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해 왔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네 번째로 퇴진론을 언급하고 나서자 정청래 최고위원이 반격에 나섰다. ‘당의 대포’라고 불리는 그의 독설이 주 최고위원을 향해 작렬했다.

아래 사진은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부르는 유승희 최고위원. [뉴시스, YTN 화면 캡쳐]

 ▶주승용 =“이번 주말까진 발언을 자제하겠다고 했지만 대표님께서 아무 말씀도 없고, 입이 간질간질해서 한 말씀만 한다. 패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비공개, 불공정, 불공평이다. 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그대로 있는 것도 하나의 불공평이다. 제갈량이 와도 당내 갈등을 해결 못할 심각한 상황이다. 제갈량 정치의 원칙이었던 3공 정신을 되살리면 희망이 있다. (3공은) 공개, 공정, 공평이다 .”

 ▶정청래 =“공개, 공정, 공평….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 치는 게 더 문제다. 자중지란을 일으키기보다 단결할 때 협조해야 한다.”

 그의 ‘공갈’ 발언에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됐다. 허공을 보며 분을 삭이던 주 최고위원이 다시 발언권을 얻었다.

 ▶주승용=“치욕적이다. 나는 세상 그렇게 살지 않았다. 사퇴하지 않을 거면서 사퇴한다고 공갈 쳤다? 설사 그렇다 해도 (정 최고위원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저 같으면 ‘주승용 의원의 말은 틀렸습니다, 주 의원과는 의견이 다릅니다’고 하겠다. 제가 아무리 무식하고 무능해도…. 저는 지금까지 공갈치지 않았다. 공개석상에서 그런 말을 들었으니 저는 사퇴한다. 모든 지도부도 사퇴해야 한다.”

 주 최고위원은 자리를 박차고 퇴장했다. 문 대표와 오영식 최고위원, 양승조 사무총장 등이 회의장 밖까지 그를 붙들러 나갔지만 되돌아오지 않았다. 문 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으로 돌아오고 여기저기서 “참으로 민망한 날”(전병헌 최고위원)이란 말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발언 순서가 된 유승희 최고위원이 돌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어제 경로당에서 인절미에 김칫국을 먹으며 노래 한 자락 불러 드리고 왔다”며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며 ‘봄날은 간다’의 첫 소절을 불렀다. 유 최고위원은 노래를 한 소절만 부르고, 박근혜 정부의 노인 복지 문제를 비판한 뒤 발언을 마쳤다. 하지만 분위기는 더욱 썰렁해졌다. 다음 발언자인 추미애 최고위원은 “유 최고위원이 한 소절만 불러서 안타깝다. 끝까지 불렀다면 분위기 반전인데, 노래에 맞춰 예쁜 분홍색 꽃같은 색의 옷도 입고 오셨는데…”라며 유 최고위원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문 대표는 “당의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늘 발언은 우리끼리 있는 자리에서는 몰라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했다.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정 최고위원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정 최고위원은 문 대표가 사과를 권유했으나 “주 최고위원이 문 대표를 비판하는 것도, 내가 주 최고위원을 비판하는 것도 자유”라며 거부했다.

서승욱·위문희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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