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김현식 맨발 사진 못잊어

"스타들의 사진이 한 시대의 유행을 반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형제.누이의 모습 또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28년간 패션.인물 사진 분야에서 맹활약해온 사진작가 김중만(金重晩.50)씨가 자신의 작품활동을 결산하는 사진집 'AFTER RAIN I,II'(소담출판사) 를 30일 펴낸다. 이 책에는 그가 그동안 찍었던 30만장의 작품 가운데 선별된 5백여 컷이 실렸다.

金씨는 또 북한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오는 6월 7일~21일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작품집에 실린 사진들을 전시, 판매 수익금 전액을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에 전달할 예정이다.

사진집은 1백75명의 배우.가수.모델 등과 풍경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데뷔 초기의 가수 조용필씨, 젊은 시절의 배우 안성기씨, 그룹 신화의 세미누드, 화장을 하지 않은 이미연씨 등도 포함됐다.

金씨는 '내사랑 내곁에''사랑했어요' 등 숱한 히트곡을 남긴 요절 가수 김현식씨의 사진을 책 표지에 실었다. 1990년 6월 어느날 고인이 "형! 바닷가를 조용히 거니는 모습을 찍어줘. 이번만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줘"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비 내리는 부산 해운대 해변에서 신발 위로 올라선 고인의 발을 카메라로 훔쳐냈다.

이후 3개월도 안된 11월 초 고인은 32세의 나이에 지병인 간경화로 세상과 이별했다.

"현식이는 아마도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저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술만 먹으면 뭐가 그리도 가슴에 맺힌 게 많았는지 울분을 토하며 저에게 싸움을 걸어왔죠."

'인기 프리랜서 작가'라는 金씨의 명성 뒤에는 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도 많았다.

그는 중학교를 마친 뒤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이후 프랑스로 이주한 뒤 니스 국립응용미술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사진작가로서의 그의 삶은 75년 대학 1학년 때 우연히 친구 방에 마련된 암실에서 사진현상을 도우면서 시작됐다.

"5분 만에 인화지 위에 그림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까지 전 서양화 한 편을 그리는 데 3개월을 매달렸기 때문이죠."

이후 그는 친구한테 카메라를 빌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77년 최연소(23세)로 프랑스 '오늘의 사진작가' 80명 중 한명으로 선정됐다. '보그''엘르' 등 프랑스 잡지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78년 귀국했다. 이후 영화배우 오수미씨와 결혼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하지만 곧이어 불행이 찾아온다.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었던 그는 85년 당국의 허락 없이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일본으로 강제추방됐다. 6개월 만에 귀국한 그는 1년 만에 다시 미국으로 추방당했다.

"두 번이나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돈 한푼 챙길 시간조차 주지 않고 다짜고짜 공항으로 끌고갔죠. 공항서 아침 첫 비행기에 실려 이국 땅에 짐보따리 처럼 버려졌어요. LA에선 사진현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하루에 6달러50센트짜리 모텔방에서 무려 8개월간 지냈어요. 아침마다 얼굴 위를 슬금슬금 기어가는 바퀴벌레가 잠을 깨웠죠. 그 땐 '약을 먹고 죽을까, 아니면 약 먹기 전에 죽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죠."

그는 결국 88년 한국 국적을 취득해 귀국했다. 같은 해 부인과 이혼했고, 오수미씨는 92년 하와이에서 여행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국외추방.이혼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마약에도 손을 대 구치소.정신병원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젊은 시절의 좌절과 방황이 제 사진의 자양분이 됐습니다. 고통이 없었다면 사진이 진실과 영혼을 담아야 한다는 점을 모른 채 시류에 영합하는 작가가 됐을지도 몰라요."

하재식 기자

*** 약력

▶1977년:프랑스 니스 국립응용미술대 수료, 프랑스 ARLES 국제사진페스티벌 '젊은 작가상' 수상, 프랑스 오늘의 사진작가 80인 중 최연소 작가로 선정

▶85년:한마당화랑 개인전

▶90년:사진집 '넋두리-김현식' 출간, 맥화랑 개인전 '북경의 나날'

▶2000~2001년:성곡미술관 개인전 '아프리카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