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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지하철 액션영화 튜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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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액션영화 '튜브'는 "철저하게 오락영화를 만들었다"는 백운학 감독의 말이 작품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보기 즐거운 상업물로 만드는 데 주력한 이 영화의 목표는 단 하나다.

여태 한국영화에서 시도하지 못한 스피드의 재현이다. 시속 1백40㎞로 내달리는 지하철에서 전개되는 액션은 분명 예전 우리 영화에서 경험하지 못한 장면이다.

그 때문에 기획.제작에 5년이 걸리고, 돈 문제 등으로 개봉 날짜가 연기되긴 했어도 뒤늦게 찾아온 '지각생'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일단 소재가 새롭다. 영어로 지하철을 뜻하는 제목처럼 사건의 80%가 지하철 주변에서 일어난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 '다이하드3'에서 부분적으로 선보인 적은 있지만 '튜브'는 지하철을 영화의 알파와 오메가로 이용한다. 8억원을 들여 실제와 똑같은 전동차 두 량을 만들기도 했다. 곳곳에 쏟은 땀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특히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마냥 앞으로만 달리는 지하철 안팎에서 펼쳐지는 형사 장도준(김석훈)과 테러리스트 강기택(박상민)의 대결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도 컸다. 철로에 쓰러진 사람에게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거나, 일촉즉발의 순간에 반대쪽 선로로 방향을 틀거나, 내부에 숨겨진 폭탄이 터지며 화염에 휩싸이는 등의 지하철 모습이 꽤나 리얼하다.

달리는 지하철에서 뛰어내리고, 지하철 차량 밑에 바짝 매달려가는 주연 김석훈의 연기도 자연스럽다. 한국영화의 기술적 성장이 엿보인다.

70억원이 들어간 '튜브'에는 사실 걱정스러운 시선이 몰렸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아 유 레디?' 등 지난해 비참하게 쓰러졌던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철(前轍), 즉 대중에겐 부담스런 철학적 내용을 스펙터클한 액션에 담으려다 결국 양쪽 모두 실패한 사례를 되풀이할 경우 충무로 전체가 타격을 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이런 면에서 '튜브'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최근 인기를 끈 조폭 코미디의 양념 캐릭터, 예컨대 욕지거리와 엽기 행동을 일삼는 양아치(권오중)나 실속 없이 허풍만 떨지만 한편으론 귀여운 지하철 수사대 반장(임현식) 등을 포진시켜 긴박한 순간에서도 웃음을 끌어내는 잔기술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많다. 가장 큰 취약점은 개연성 부족이다. 얘기가 매끄럽게 전개되지 못한다. '포장'에 전력하는 가운데 영화의 기본인 드라마는 가볍게 넘긴 생각마저 든다. 국가에 배신을 당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지하철 인질극을 벌이는 전직 정보요원, 사랑하는 애인의 생명을 앗아간 테러리스트를 체포하기 위해 돌진하는 형사, 그런 형사를 멀찌감치 바라보며 짝사랑하는 소매치기 소녀(배두나)의 행동 동기가 파편처럼 불쑥불쑥 던져지는 까닭에 관객은 그 빈틈을 상상으로 메워야 한다. 또 완급 조절이 없는 속도감 하나에 기대는 바람에 막바지 비장한 순간에도 흡인력이 반감된다.

감독은 '스피드''더 록''다이하드' 등 숱한 할리우드 영화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그것까지 나무랄 순 없다. 그러나 그 영화들의 평면적 짜깁기, 순간적 모방에 그쳐 제3의 변용이란 말은 쓸 수 없을 것 같다. 겉멋이 강한 탓에 여운이 덜한 영화랄까. 다음달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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