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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찰청장, 물러나 줬으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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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며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허준영 경찰청장이 사과성명을 발표한 뒤 특별진급 경찰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농민 사망 관련 대국민 사과 회견을 한 직후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 김만수 대변인 등과 출입기자들이 대화를 나눴다.

-노 대통령은 허준영 경찰청장의 문책 권한이 없다고 했다.

(이병완 실장)"대통령께서는 법적.제도적 책임만 얘기한 게 아니겠느냐."

-헌법에는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이 보장돼 있지 않느냐.

(김만수 대변인)"2년 임기제인 경찰청장이 물러나는 상황은 현행 법에선 국회의 탄핵뿐이다."

-사유가 아주 위중해도 문책은 불가능한가.

(이 실장)"이번은 현장 지휘 책임인데…그게 판단의 문제이고…어쨌든 대통령의 말 그대로만 이해해 달라."

노 대통령은 앞선 회견에서 "우리 제도상 대통령이 (임기제)청장을 문책인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나 권한이 없다"고 했다. "여러분은 이 제도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시종 답답해하는 표정이었다.

"청장이 자진사퇴하면 수리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내 판단을 얘기하는 것은 대통령이 문책의 권한을 갖지 않게 한 제도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 같아 대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병완 실장은 "대통령의 사과와 회견에 대해 사전에 경찰 측과 연락, 조율한 것은 없다"고 했다.

농민 단체를 중심으로 거센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경찰청장의 거취에 대해 청와대가 고심하는 모습이다. 자칫 청장 퇴진을 공개 언급했다가 강한 반발에 부닥치면 최고 권부와 권력의 수단이 정면충돌하는 부담스러운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허 청장은 "안 물러나겠다"고 선언하고 배수진을 친 상태다.

청와대 내 분위기는 허 청장이 알아서 용퇴해 줬으면 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노 대통령의 한 핵심 참모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상 허 청장의 책임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분명히 언급하고 심기일전을 촉구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회견 내용 가운데 허 청장에 대한 '재신임'을 시사하는 언급은 없지 않으냐"고 했다.

그는 "같은 시위 현장에서 농민이 2명이나 사망한 것은 군사정부에서도 흔치 않던 일"이라며 "참여정부의 인권에 자긍심을 지녀왔던 노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심각하고 엄중하게 생각해 왔다"고 덧붙였다. 더구나 노 대통령이 성난 농심을 의식해 정부의 실수에 대해 최초로 국민에게 고개를 숙인 시점이다. 노 대통령은 그간 장수천 투자 및 진영 땅 투기 논란, 최도술 SK 비자금 수수사건,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결과 발표 등 주변 문제와 관련해서만 네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시민사회단체의 각성도 촉구했다. 그는 "처음부터 준비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어떤 정당성의 근거를 갖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그 같은 상황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시민사회단체의 책임의식을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정부도 그와 같은 사태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폭력시위가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로 미루어 불법 시위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은 별도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최훈 기자<choihoon@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 허준영 경찰청장은=허 청장은 외무고시(14회) 출신이다. 경북고를 졸업한 대구 출생으로 노무현 대통령이나 현 정부와는 인연이 없다. 그는 강원경찰청장 시절 참여정부에서 본격 도입한 다면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당시 정무수석이던 유인태 의원의 추천으로 청와대 치안비서관이 됐다. 이후 청와대에서 여권 내 실세들과 교분을 넓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를 나오면서 서울청장을 거쳐 경찰청장으로 승승장구했다. 임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시력과 보충역 기간 중 복무 여부, 부인의 임대수익 등의 논란이 제기됐으나 여야 어느 쪽도 적극적으로 문제삼지 않아 무난히 통과했다.

노 대통령 사과 일지

<직접 사과>

▶ 2003년 5월 28일 : 생수회사 '장수천' 투자 논란, 진영 땅 소유주 의혹 관련

▶ 10월 10일 :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의혹 사건 관련

▶ 12월 16일 : 불법 대선 자금 관련

▶ 2004년 3월 11일 : 친.인척 비리 의혹 관련

<간접 사과>

▶ 2003년 9월 24일 : 태풍 상륙 시 공연을 관람한 데 대해 당시 윤태영 대변인 통해 "국민께 송구" 입장 발표

▶ 2004년 3월 12일 : 탄핵 정국 관련 김우식 비서실장 통해 "국민께 송구" 의사 표명

▶ 2005년 1월 9일 :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사퇴에 대해 총리와의 오찬에서 사과성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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