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칼럼

왜 아제르바이잔을 버려두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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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아제르바이잔은 원래 나라 이름 자체가 '불의 나라'를 뜻한다. 이제 비로소 이름값을 하게 된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 수준에 불과하지만 성장률로는 이미 세계 1등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무려 18%를 기록했단다. 국제적인 지위도 훌쩍 뛰어올랐다. 북한처럼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통령을 물려줬건만, '악의 축'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미국이 입 밖에도 안 꺼낸다. 과거 소련에 의해 폐쇄, 장악됐던 카스피해 에너지 공급루트가 통째로 달라지게 됨에 따라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군사 외교적으로도 무지무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미국은 이미 클린턴 때부터 아제르바이잔을 칙사대접해 왔었다.

아무튼 정치적 불안 요인에도 불구하고 아제르바이잔은 카자흐스탄과 함께 유라시아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석유왕국의 위세를 부리게 돼 있다. 이 같은 중요한 판도 변화를 한국은 아는가 모르는가. 아제르바이잔에는 한국의 대사관도, 영사관도, KOTRA도 없다. 우즈베키스탄 대사가 겸직 대사를 하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외교통상부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죽은 전임 대통령이 아직도 살아서 통치하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이쯤 되면 한국 정부의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어떤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관심도 없고 알려는 노력조차 찾기 어렵다.

기업이라 해서 전혀 나을 게 없다. 삼성이나 LG의 휴대전화 광고가 거리에 군데군데 붙어 있을 뿐, 이곳에 지점이나 사무실을 낸 국내 기업은 하나도 없다. 대우가 망하기 전에는 자동차가 진출해 재미를 좀 봤다는데, 이젠 그것도 흐지부지다. 인터뷰 주선도 명예총영사를 맡고 있는 현지 기업인한테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노다지가 쏟아질 아제르바이잔이라는 나라에 한국 기업의 발길이 이렇게 뜸하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바쿠는 벌써 과거의 궁기를 걷어내면서 하루가 다르게 활기를 찾아 나가고 있었다. 도심 곳곳에 낡은 건물을 뜯어내고 새 건물을 짓는 리모델링이 유행인데, 이런 물 좋은 곳에 집짓기 선수인 한국 건설업체가 눈에 띄지 않는다니.

기름 생산과 송유관 수입으로 챙기는 뭉칫돈으로 이 나라 정부가 당장 뭘 하겠는가. 길 뚫고 건물 올리고 집짓는 일부터 왕창왕창 벌여 나가는 것을 비롯해 비즈니스 기회가 사방에서 늘어날 텐데, 한국 기업들은 아무 곳에도 없다. 이제 한국 기업들도 배가 부른 것일까. 두바이에서 만난 한국 비즈니스맨은 이렇게 말했다. "에이, 아제르바이잔 같은 데를 골치 아프게 뭣 하러 갑니까. 요즘 젊은 사원들에게 그쪽으로 인사 발령을 내면 아마 회사를 그만두려 할 걸요."

관공서 사람들이야 원래가 철밥통들이니까 그렇다 치고, 기업마저 이런 식이라면 한국 경제의 장래는 정말 불길하다.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