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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통계인,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인비저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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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박형수
통계청장

무한경쟁 시대에 바야흐로 자기 PR(홍보)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자기 홍보를 통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라는 주문까지 이어진다. 블로그,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마다 자기 홍보 콘텐츠들이 넘쳐난다. 자신의 전문분야와 관심사는 물론 일상까지 글과 사진으로 공개한다. 간혹 ‘이래도 나를 보지 않을래’라는 자아도취적 홍보 또는 ‘제발 내 얘기 좀 들어주세요’라는 애절한 메시지도 등장한다. 소셜미디어 전성시대에 자기홍보는 또 하나의 유행 또는 강박이 되고 있다.

 이처럼 거센 자기홍보시대의 대세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을 조명한 『인비저블 Invisibles』란 제목의 책이 올 초에 출간되어 화제다. 커튼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책의 저자 데이비드 즈와이그는 ‘인비저블’을 외부의 찬사나 보상에 별 관심이 없으나 자신의 직업 영역에서 고도의 전문성으로 막중한 책임을 지며 일을 통해 깊은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인비저블』에서는 수술집도의가 아니라 마취 전문의, 잡지사의 기자가 아니라 사실 검증전문가, 외교관이 아니라 UN동시통역사 등 숨겨진 전문가와 엘리트들의 사례를 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굳이 엘리트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맡은 일에 매진하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비저블’이다. 황정민이 열연한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처럼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이 풍요로운 시대를 만들어낸 수많은 덕수들, 즉 우리의 부모들이 모두 ‘인비저블’이다.

 저자가 꼽은 ‘인비저블’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둘째, 치밀성, 마지막은 무거운 책임감이다. 국가통계작성기관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쉬운 숫자와 화려한 그래픽으로 꾸며진 통계라는 무대를 만드는 모든 통계인들을 ‘인비저블’의 세 가지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는 조용한 영웅으로 부르고 싶다. 무대를 가리고 있는 커튼을 살짝 젖히면 책임감을 갖고 현장을 발로 누비는 통계조사원들의 분주한 모습과 치밀한 분석과 검증을 위해 숫자와 씨름하고 있는 통계전문가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완벽함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인비저블’의 공식 중 하나이다. 일을 잘할수록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인비저블’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만 모습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는 일에 작은 관심과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나를 소개합니다. 60여명의 스태프가 차려놓은 밥상에서 나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죄송합니다”라고 한 몇년 전 어느 영화인의 수상소감처럼 많은 사람들이 통계 수치와 그래픽을 보면서 그 통계를 만든 조용한 영웅들의 수고를 떠올려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통계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작은 바람이다.

박형수 통계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