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코트 '아줌마 천하'… 전주원·윌리엄스 등 7명 활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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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에서 주부 선수의 활약이 돋보인다. 여섯 팀에 모두 주부 선수가 있고, 이들이 모두 주전 선수다. 이들의 활약이 팀의 승부를 결정한다.

신한은행에는 전주원(33).태지 맥 윌리엄스(35), 우리은행에는 김영옥(31), 금호생명에는 이종애(30), 신세계에는 양정옥(30), 삼성생명에는 박정은(28)이 있다.

국민은행의 국내 선수는 모두 미혼이지만 외국인선수 티나 톰슨(30)이 8개월 된 아들을 둔 엄마다.

팀에 주부 선수가 많으면 유리할까, 불리할까?

체력이 달려 불리할 것 같지만 감독들에게 물어보면 유리한 점이 더 많다고 한다. 결혼한 뒤에도 뛸 수 있다면 체력과 기량이 아주 뛰어난 선수고, 여기에 경험이 더해져 원숙한 농구를 한다는 것.

신한은행의 이영주 감독은 "주부 선수는 팀을 또 하나의 가정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기고 지는 일, 훈련과 경기, 숙소 생활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주원 같은 선수는 팀 분위기가 나빠지거나 성적이 떨어지면 잠을 못 이룰 정도"라고 말했다.

금호생명의 김태일 감독은 "여자 서른이면 세상을 훤히 보는 나이 아니냐. 이종애 선수는 자기 앞가림 정도를 넘어 팀을 이끈다"고 자랑한다. "주부는 억척스럽다더니 훈련과 경기에서 보여주는 근성은 후배 선수들이 절대 못 따라갈 정도"라고 했다.

우리은행의 김영옥은 결혼한 뒤 처녀 때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 선수다. 김영옥은 결혼(2003년)을 하고 우리은행으로 이적(2004년)한 뒤 지난 여름리그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주부 선수들은 다부지다. 지난해 9월 딸을 낳아 국내 유일의 엄마 선수인 전주원은 "나를 이기는 후배 선수가 등장하면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후배에게 길을 터주기 위한 은퇴는 프로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두 아이의 어머니인 윌리엄스를 칭찬했다.

"그날 그날 자신이 먹은 음식, 체력훈련 내용 등을 다 기록해요. 관리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 나이에도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 활약할 수 있는 거겠지요."

원조 주부 선수는 박찬숙(46) 여자농구연맹(WKBL) 경기위원이다. 박 위원은 1985년 국내무대에서 공식 은퇴했으나 89년부터 4년간 대만에서 뛰었고, 92~93년에는 실업농구 태평양의 선수 겸 코치로 농구대잔치에 출전했다.

박 위원은 "은퇴하고 나니 공이 다니는 길이 훤히 보였다. 결혼 뒤 새로운 각오로 농구를 한다면 미혼 때보다 훨씬 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후배에게 양보하고 돕는다는 마음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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