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소곤소곤연예가] 육봉달 박휘순 "아홉수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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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상의 행복은 일 년을 마무리할 때 연초의 자신보다 더 나아졌다고 느끼는 것이다.'(톨스토이)

일 년을 마무리하는 요즘 이 사람이라면 분명 최상의, 최고의 행복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지 않을까.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달리는 마을버스 2-1에서 뛰어내린' 우리의 육봉달 박휘순. "연초의 저 자신보다는 물론 스물아홉 평생을 통 틀어 지금이 훨씬 나아졌어요. 이 작은 눈에 눈물을 펑펑 쏟을 만큼 제 인생 최고의 해가 바로 올해입니다."

남들은 아홉수라며 조심조심 몸 사리는 나이. 하지만 휘순은 세상을 향해 온몸을 던져 아홉수의 징크스를 확실히 깼다는데, 그의 스물아홉이 특별할 것이란 것은 이미 예견된 사실이었다고.

"제가 보기보다 귀한 아들이거든요. 아버지가 결혼 17년 만에 어렵게 얻은 첫아들이 바로 저예요. 제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는 당시 금보다 귀하다는 쌀을 팔아 종로 유명한 작명소를 찾아가셨답니다."

그래서 지어진 이름이 바로 아름다울 '휘', 순박할 '순' 휘순. 그런데 정작 아름답고 순한 휘순의 아버지가 가장 궁금하셨던 것은 아들이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리기보다 도대체 언제 장가를 가서 손자를 안겨줄 것인가였다.

"아버지가 마흔이 넘어 저를 낳으셨거든요. 그래서 급한 맘에 물었더니 제 나이 스물아홉에 장가도 가고 손자도 본다고 했대요. 남들은 일부러 아홉수에는 결혼을 안 시킨다고 하는데 저는 첫돌도 채 되기 전부터 얼른 스물아홉 살 되어 장가가길 너무 바라셨답니다."

하지만 스물여덟 살까지 결혼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밥벌이 한번 하지 못했던 휘순. 무작정 개그맨 되겠다고 하루도 빠짐없이 대학로에서 살다시피 하는 가난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휘순이 잘 때 방에 들어와 휴대전화 요금 지로용지를 내주시고, 텅 빈 지갑 속 교통카드도 몰래 충전해 주셨다. 그리고 이듬해 그렇게 바라던 스물아홉 살은 됐지만 여전히 생활력 제로였던 휘순의 결혼은 감히 꿈도 못 꾸고 모두들 포기할 무렵, 드디어 5수 끝에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개그맨 시험에 합격했는데.

"덕분에 아버지께 손자 대신 합격증을 안겨드렸죠. 그리고 예쁜 며느릿감처럼 반가운 월급 비슷한 고정적인 출연료를 받아서 부모님께 몽땅 드렸답니다."

모든 것이 연초보다 나아지고 달라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방송국에 출근하는 육봉달 박휘순. 최고의 해를 보낸 그의 내년 운명을 살짝 점쳐 본다면?

"정말 잘 모르겠어요. 부담도 크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가 지금까지 한 것보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죠. 노력이 제 운명입니다."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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