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끼의 절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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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쪽 마당 앞에 까치가 둥지를 틀었다. 옛날 같으면 장원급제는 떼어놓은 당상이지만 천명을 안다는 나이에 장원이라니 어울리지도 않는 이야기이다.
그럼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누? 성종께서 철행을 하시는데 까치 둥지를 나무째로 문앞에 옮겨 심는 사람이 있었다. 『무얼 하려고 그러시우?』『문 앞의 나무에 까치가 둥지를 틀면 장원을 한다는데, 보시다시피 나무가 있어야죠? 혹시나 효혐이 있을까 해서 이래보는 겁니다』
『그럼 댁은 제술을 잘 하슈? 강송을 잘 하슈?』
『둘 다 하지요.이래봬도 과거공부로 수십년은 곯았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급제를 시커주셨다는 이야기가 『연여실기술』 에 적혀 있다.
옮겨다 심은 둥지에도 효험이 있거늘, 제 날개로 날아와서 튼 둥지가 설마 무신할라구? 벼락감투가 아니면 하다못해 무슨 복권이라도…,하다가 나는 피식 웃어 버린다.
평생 야인으로 불로소득의 횡재를 생각하다니, 그야말로 벼락 맞을 이야기 밖에 안될것 같다.
산나물을 뜯던 아내가 산토끼 새끼를 잡아 왔다. 이놈은 성깔이 대단해서 사람에게 잡히면 그날부터 단식투쟁을 벌인다.
물 한모금 풀 한포기를 안먹으면서 그예 굶어 죽고 마는놈이다.
아무리 목말라도 이름 사나운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느라거늘, 먹을거 안먹을거 덮어 놓고 꿀꺽 해대는 무리에 비하면 산토끼 새끼란 놈의 절개가 한결 맵고 개결하다. 문전의 까치 또한 기서나 고소 고발로 화를 옮기느니보다 얼마나 고마운 전설인가?
『키우지도 못할걸 왜 잡아 왔어?』
『귀엽잖아요?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놓아 보낼 거예요』
서울을 떠나 산가 한 채를 짓고 사니까 남들은 이웃을 아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말이다. 기쁜 소식을 전해 준다는 까치, 도천을 마시지않는 산토끼보다 더한 이웃이 시정에 얼마나 될까?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 새 짐승과 더불어 사는것은 시정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복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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