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 노인, 빈곤 소년 금강산서 가족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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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노인과 빈곤가정 어린이들이 해금강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승식 기자

금강산에는 준호(13.가명) 또래의 아이가 적지 않게 보였다. 거의 다 부모 손을 잡고 가족 관광을 온 아이들이다.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준호도 금강산 나들이에 나섰다. 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여행이었다. 금강산을 돌아보는 2박3일 동안 함께할 특별한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준호 또래의 저소득층 아동과 실향노인 등 모두 40명이 금강산을 찾았다.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 7주년을 맞아 이들을 18~20일 겨울 금강산에 초대한 것이다. 아이와 노인이 일대일 결연도 맺었다. 준호는 실향노인 이의순(77) 할머니와 사흘 동안 금강산을 함께 다녔다. 몸이 불편한 친할머니와는 거의 외출한 적이 없다는 준호는 "할머니, 저 바위는 꼭 토끼 얼굴 같아요"라며 꽁꽁 언 금강산 바위를 뛰어다녔다.

17일 최저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던 금강산은 18일 영하 3도로 올라 갑자기 포근해졌다. 금강산 사업소의 총소장을 맡고 있는 현대아산의 김영현 소장은 "아이들과 노인분들이 산에 올라가기 좋도록 날씨가 많이 풀리고 안개도 걷힌 모양"이라며 즐거워했다.

이번에 초대된 실향민 20명도 형편이 어려워 북측 여행에 엄두를 못 내던 노인들이었다. 고향이 평양인 김정숙(80) 할머니는 26세에 남으로 내려온 뒤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 아들이 "고향 방향을 한번 바라보고라도 오시라"고 여러 번 금강산 관광을 권했지만 일용직 노동으로 돈을 벌고 있는 아들에게 미안해 한사코 사양해 왔다. 김 할머니는 여든의 나이에도 4.3km를 걸어 최종 목적지인 구룡폭포까지 올라 "여기서 고향이 550리라는데"라며 아쉬워했다.

현대아산이 금강산에 저소득층을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아산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린이와 노인들이 서로 의지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관광 일정을 짰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를 공동 주관한 한국복지재단의 신경근 과장은 "아동과 노인이 함께 해 어느 때보다도 따뜻했던 캠프"라고 말했다.

이들을 위해 금강산 온천과 교예단 공연 관람도 마련됐다. 금강산 호텔에서 한방을 쓴 아동과 노인은 온천에도 함께 들어가고 옆 자리에 앉아 공연도 보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현대아산 관광기획팀의 이창용씨는 "앞으로 종군위안부 할머니 등 정서적으로 위안이 필요하신 분들을 많이 초대해 금강산을 따뜻한 나눔과 안정의 장소로 자리 잡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에 돌아오는 날, 부모님 얼굴을 본 지 3년이 넘었다는 소희(14.가명)는 "학교 선생님 중에도 금강산에 와 본 분이 없다"며 학교에 가서 자랑할 생각에 밝은 표정으로 온정각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금강산=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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