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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2005 문화계 - 뮤지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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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어떻게 뽑았나

공정한 설문을 위해선 판을 제대로 읽는 전문가 집단을 선정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

평론가라는 명성 보단 뮤지컬을 빼놓지 않고 보는, 실질적인 사람을 선발해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다. 뮤지컬 제작에 관여한 인사는 객관적이지 못 할 것 같아 되도록 제외했다. 최종적으로 공연기획자 4명, 평론가 및 언론인 3명, 뮤지컬 동호회 운영자 3명으로 라인업이 구성됐다.

이들에게 5개의 질문을 던지고 항목별로 세 작품 혹은 세 명을 고르도록 했다. 1,2,3위로 순위를 정하고 순위별로 점수에 차등을 두었다. 즉 1위는 3점, 2위는 2점, 3위는 1점을 주었다. 이럴 경우 A란 작품을 10명 모두가 1위로 꼽으면 30점 만점을 받게 된다.

동점일 경우에 더 많은 사람의 추천을 받은 작품을 우선했다. 단 어느 항목이든지 최고 점수가 10점 이하일 경우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아닌 것으로 판단해 순위를 발표하지 않았다.

국내에 첫 선을 뵌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가 올해 최고의 뮤지컬로 선정됐다. 본지가 뮤지컬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남녀간의 일상을 아기자기하게 그린 ‘아이 러브 유(I Love You)’를 간발의 차로 눌렀고, 초대형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아이다’도 압도하는 이변을 낳았다.
창작 뮤지컬 중엔 PMC 프로덕션이 제작한 ‘뮤직 인 마이 하트(Music in my Heart)’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최고의 남녀 배우론 오만석(헤드윅)과 배해선(아이다)이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최민우 기자

막상 뚜껑 열어보니
노트르담 드 파리

'오페라의 유령', '아이다' 압도 이변

새로움에 대한 갈증일까.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에 익숙한 국내 관객들에게 충격을 준 '노트르담 드 파리'가 최고의 점수를 얻었다. 프랑스 오리지널팀이 내한해 2월말부터 한 달 남짓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다. 4명이 1위로, 2명이 3위로 뽑아 14점을 얻었다. 대사 없이 노래만으로 이루어진 낯선 형식이지만 호소력 짙은 가창력과 담백한 무대가 정직하게 다가온 듯 싶다. '시적이고 섬세하다'(박병성), '색채미가 돋보인다'(이준한) 등의 평가가 있었다.

2위는 중소형 뮤지컬의 전범처럼 자리잡은 '아이 러브 유'(설앤컴퍼니)가 선정됐다. 1점차로 아쉽게 2위에 머물렀다. '한국 입맛에 맞게 번역된 재치있는 대사'(원종원)가 좋았단다. 3위 역시 다소 예상밖이다. 8월에 공연됐던 '돈키호테'(오디뮤지컬컴퍼니)가 선정됐다. 아쉽게도 국내 창작물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수입이든 라이선스든 외국 뮤지컬과의 수준차가 아직은 상당히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 하겠다.

10명중 7명 "오만석, 넘버 원"

'헤드윅'의 오만석이 압도했다. 설문자 10명중 무려 7명이 1위로 뽑았다. 3위 안에 뽑지 않은 사람은 단 한명 뿐이었다. '조드윅(조승우) 보러 갔다 오드윅(오만석)에 반한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오만석은 '헤드윅'뿐만 아니라 '사랑은 비를 타고' '암살자들' '겨울나그네'에 잇따라 출연하며 올해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소름이 돋을 만 했다'(원종원) '주연급 남자 배우에 목말라하는 뮤지컬계에 단비'(한소영)란 지적이다.

2위는 40대의 반란 남경주에게 돌아갔다. '아이 러브 유'에서 보여준 그의 생동감있는 표정과 동작은 감탄을 자아냈다. '한물 갔다'란 비아냥을 한방에 날려 버리며 '올해의 재기상'감 만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40대의 이러한 배우가 있다는 것이 기쁘다'(박병성), '올해는 남경주 재발견의 해'(김도형). 3위는 '돈키호테'의 류정한에게 돌아갔다. 특히 뛰어난 가창력에 박수를 보냈다. '더블의 설움을 떨쳐냈다'(김일송)는 평가다.

아이다를 능가한 배해선의 연기

'아이다'의 배해선에게 몰표가 던져졌다. 6명이 1위로, 2명이 2위로 뽑아 22점을 획득해 다른 여배우들을 압도했다. 여주인공 아이다가 아닌 암네리스 공주로 나왔음에도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는 점은 그녀의 연기가 얼마나 강렬했는가를 입증하는 증거다. 허영심 많고, 때론 좌절하며 때론 비장하기까지 한 복잡한 심리를 무리 없이 소화해 냈다. '그녀가 없었다면 아이다가 지금처럼 흥행할 수 있었을까'(조수진) 등이 배해선을 선정한 이유였다. '돈키호테'의 이혜경이 2위를 차지했다. '순수하고 여린 역할에서 탈피해 밑바닥 인생을 사는 거친 여인을 제대로 표현했다'(조형준) '기존의 이혜경 이미지를 180도 바꾸어 놓았다'(김희철) 등 연기 변신에 대한 칭찬이 많았다. '헤드윅'의 이영미(2위 2명,3위 1명)와 '카르멘'의 쏘냐(1위 1명,2위 1명)는 똑같이 5점을 얻었으나 추천한 사람이 더 많은 이영미에게 3위가 돌아갔다.

독특한 발상 ‘뮤직 인 마이 하트’

독특한 발상과 서정적인 노래가 돋보인 '뮤직 인 마이 하트'가 최고의 창작 뮤지컬로 선정됐다. 4명이 1위로, 2명이 2위로 뽑아 16점을 획득했다.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고, 외국 작품을 어딘가 모방한 듯 했지만 전문가들은 "창작 뮤지컬의 웰 메이드(well-made) 시대를 열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여자의 심리를 생생히 그려낸 삼순이표 뮤지컬'(이준한)로도 평했다.

막심 고리키 원작의 '밑바닥에서'와 아카펠라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똑같이 9점을 얻었으나 추천자 수에 따라 각각 2,3위를 차지했다. '밑바닥에서'는 하층민들의 어둡고 절망적인 삶을 밀도있게 표현했다는 평가다. '적당히 무게를 뺀, 그렇지만 가슴을 울리는 솔로곡'(박병성)이 좋았단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이 주축이 돼 만든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고전을 새롭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대형보단 소형 창작 뮤지컬이 대개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

기대에 못 미친 뮤지컬

의견이 제각각이었다. 무려 18개의 작품이 거론됐다. 1위가 받은 점수가 8점에 불과했다. 유의미한 통계가 아닌 것으로 판단해 순위를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전문가들의 쓴소리는 나름대로 유효 적절했다. '전체를 관통하는 연출의 부재(리틀 숍 오브 호러스)', '판타지를 뮤지컬로 옮기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준 대표 사례(불의 검)' '한국적인 재해석을 전혀 못했다(뱃보이)'라고 꼬집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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