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유학생」과 「유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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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년 전 파리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던 H씨는 얼마 전 파리의 한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들다가 『요즘 학생들이 참 부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옆자리를 가리켰다.
20세 안팎의 한국여학생 4명이 푸짐한 식탁 앞에서 즐겁게 식사 중이었다.
『세상 많이 좋아졌어. 우리 때만 해도 공원의 비둘기를 몰래 잡아 영양보충을 했는데』H씨의 말.
H씨뿐이 아니다. 10년 전쯤부터 유학 와 있는 이른바 노인학생들도 비슷한 생각이다. 기숙사의 캉틴(급식)이나 하숙집의 메마른 식사가 전부였던 이들에게 외식, 더우기 값비싼 한국식당은 그림의 떡이었다.
요즘처럼 한국식당이 흔치도 않았거니와 프랑스나 한국정부의 빠듯한 장학금이 전재산인 이들에게 매식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자비유학생이더라도 송금한도가 낮아 사정은 같았다.
걸인급식소에서 끼니를 이으며 공부하는 학생도 있었을 때니 1년에 한 두번 한국식당을 찾을 수 있는 형편이면 그중 부자였다.
세월이 바뀌어 지금은 파리에 있는 10여개의 한국식당이 언제나 학생들로 붐빈다. 먹고 싶은 대로 사먹고 자동차까지 사서 몰고 다니는 학생도 많다.
모두가 그럴리야 없겠으나 최근 2, 3년사이 파리에 온 유학생들은 무척 여유가 있어 보인다. 나라살림이 그동안 나아졌다는 증좌겠다. 덕택에 한국학생들이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은 흐뭇한 일이다.
그러나 극히 일부학생의 지나친 호사가 어렵게 학업에만 열중하고 있는 많은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자아내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경계해야 할일 같다.
이들은 선배들의 이야기를 「옛말」이라고 코웃음치고 유흥장출입이나 면세점에서의 쇼핑에 돈을 물쓰듯하며 날을 보내는 「유학생」들이다.
얼마 전 파리대학에서 철학박사(국가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P씨는 40세가 다된 노처녀다. 20대 중반에 파리에 왔으니 15년 가까이 수학한 셈이다. P씨는 장학금과 가정교사, 베이비 시터 등으로 학업을 이었다. 공부에 쫓겨 시간도 모자랐고 여유도 없어 학교와 하숙집만을 시계추처럼 왕래했다.
그래서 에펠탑조차 아직 구경 못했노라고도 했다. 기념사진도 한장 찍은 게 없다.
귀국하기 전날 P씨는 『10년 넘게 파리에 있었으면서 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채 귀국하는 바보가 바로 나다.
악몽같은 고난의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은 곳이지만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와야겠다』며 웃었다.
자신의 말대로 P씨가 바보유학생인지는 의문이지만 파리의 「유학생」들은 P씨를 바보라고 생각한다. 2, 3년이면 박사학위를 따는 사람도 있는데 15년씩이나 걸렸으니 그렇다는 얘기다.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은 대체로 돈으로 공부하고 논문도 돈으로 사는 약삭빠른 학생들이다.
현재 한국유학생은 파리에 8백명, 지방 4백명 등 약1천2백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학생들이 많은 지방대학은 인문계의 몽팰리에대, 브장송대, 툴루즈대와 자연계의 그러노블대, 마르세유대 등이다. 한국대사관영사과에 등록하지 않고 있는 학생이 많아 정확한 수는 알 수 없다.
83년6월말 한국대사관이 집계한 유학생수는 남학생 4백65명, 여학생 4백58명 등 9백23명이었다. 지역별로 보면 파리에 6백24명, 지방에 2백99명이다. 전공별로는 인문계가 6백59명, 자연계가 2백64명이었다. 1년간 3백명이 늘어난 셈이다.
프랑스정부가 2백75명으로 집계했던 80년 말을 기준으로 하면 4년 동안 4배 이상 증가했다.
입학에 특정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일부 사립학교나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까지 계산하면 그 수가 훨씬 늘어날 것이란 얘기도 있다.
최근 르 몽드지는 양재학교특집기사에서 에스모드 게르 라비뉘에 재학중인 외국인학생의 과반수가 한국학생이라고 보도한 일도 있다.
흔히 에스모드로 불리는 이 양재학교는 사립학교로 파리본교에만 3백50명의 학생이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40%가 외국인학생이다. 3년제로 1년 수강료가 2만4백75프랑(약2백5만원) 이나 돼 무척 비싼 편에 든다.
이 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한국학생들은 일류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나 개중엔 서울서 대입학력고사에 낙방, 하릴없이 이곳에서 「유학」하는 어린 여학생도 적지 않다.
유학생 중 특히 여학생의 경우 고독과 실의에 빠져 자살하거나 도덕적으로 문란하다는 소리를 듣는 학생도 없지 않았다.
최근 20대의 젊은 부부유학생이 많아진 것도 새로운 변화다. 물을 흐려놓는 일부 학생들이 있지만 대부분 한국유학생들은 건전한 과외활동으로 여가를 보내고 건실한 면학자세로 학문을 닦고 있다.
몇 년 전 유학생들이 자비로 조직했던 재불한국학생민속극회 같은 것은 건전한 학생활동의 본보기였다. 「민속극회」회원들은 프랑스의 각 대학에서 열리는 축제 등에 초청돼 산대놀이·탈춤 등으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데 공헌했고 반응도 좋았다.
이같은 모임이 본국정부의 관계당국이나 독지가의 지원을 얻지 못한 채 학생들 힘으로만 지탱되다가 끝내 해체됐던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었다.
프랑스의 각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은 학위취득이후의 문제들을 걱정하고 있다. 귀국해서 일할 자리도 하늘의 별따기고 박사가 됐대서 프랑스에서의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 때문이다.
유학생간의 친목도모와 학교정보교환 등을 위해 한국학생들은 지난 4월28일 재불한국유학생회를 조직했다. 【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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