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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야당 위기 인식 못한 문재인 대표의 실망스러운 반성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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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새정치민주연합이 4·29 재·보선에서 전패했다. 성완종 파문으로 국무총리가 역대 최단명 기록으로 사퇴하고 대통령 최측근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을 처지에 몰렸는데도 야당 텃밭에서 큰 표차로 졌다. 당의 발원지인 광주까지 내줬다. 그런데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완패한 새정치연합의 선장 문재인 대표가 내놓은 입장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제가 부족했다”고 사과하긴 했지만 뭐가 부족했는지, 그걸 어떻게 개선할지는 제시하지 못했다. 대신 이번 선거가 박근혜 정권에 면죄부를 준 게 아니라며 부정부패를 은폐하거나 세월호 진상 규명을 막으려 하면 더 단호하게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정권이 잘못하면 야당이 맞서 싸우는 건 당연하다. 문 대표는 이런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국정을 도외시하며 민심과 불통했고, 집안 단속도 실패해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실부터 깨끗이 인정해야 한다.

 성완종 리스트는 분명 정부·여당을 혹독히 문책할 사안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이 총리를 경질하고 유감을 표시했으며 특검을 해서라도 의혹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야당은 이 문제는 이 문제대로 계속 제기하되, 민생을 위해 한시가 급한 국정 현안엔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문 대표와 새정치연합은 거꾸로 갔다. 하루 80억원씩 혈세가 들어가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차일피일 미루고, 청년들 취업 길을 터줄 노동시장 개혁 논의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대신 ‘성완종 리스트’에만 매달려 여권을 공격하는 데 열을 올리더니 급기야 ‘대통령이 몸통’이라며 정권 심판론으로 치달았다. 민생 현안을 팽개치고 정권 비판만 해선 유권자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건 2012년 대선 이래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패배한 새정치연합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문 대표는 그 고질병을 고치지 못하고 구태를 반복했다. 이러니 그가 아무리 ‘경제·안보 정당’을 역설해도 국민들은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공천도 마찬가지다. ‘친노 공천’ 소리를 피하려고 경선을 도입했지만 친노 계열 후보가 나온 곳마다 친노 후보가 당선되니 공정성 논란이 불가피했고, 그렇게 뽑힌 이들은 본선에서 경쟁력 없는 후보들로 판명 났다. 호남에는 아무나 공천해도 된다는 오만한 인상을 줘 유권자들을 분노케 했다. 그 결과 새정치연합을 누르고 당선된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정치 세력화 조짐까지 나타나 자칫 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태에서 문 대표가 물러나고 새 지도부가 들어서봤자 이 당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말로만 경제정당, 말로만 ‘친노는 없다’고 외치는 대신 행동으로 입증하기 바란다. 당장 다음달 2일 안에 공무원연금 개혁부터 완수하고, 다가올 총선에서 그야말로 투명한 공천으로 인재를 불러모아야 한다. 이런 상태로는 1년 뒤 총선과 그 다음 해 대선에서도 야당에 희망을 걸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