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 정도로 공무원연금 개혁했다고 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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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공무원연금 개혁 실무기구가 합의안을 내놨다. 보험료(기여율)를 5년에 걸쳐 월 소득의 7%에서 9%로 28.6% 올리고, 연금 지급률은 20년간 1.9%에서 1.7%로 10.5% 낮추는 것이다. 이번 안은 정치권이 공무원단체를 설득해 합의안을 도출했다는 점 외에는 평가할 만한 게 없다. 합의가 의미가 있으려면 내용이 목표에 부합해야 한다.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고작 이 정도를 하기 위해 7개월을 끌었는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2009년처럼 ‘약간 더 내고 약간 덜 받는’ 식의 숫자 조정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1차 목표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통합을 통한 형평성 제고인데, 이번 합의안에 언급조차 안 됐다. ‘우등 공무원연금-열등 국민연금’ 구조가 계속 유지된다. 형편이 훨씬 나은 공무원의 노후를 살림살이가 훨씬 팍팍한 국민이 책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이어지게 됐다. 그게 안 되면 재정 절감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이마저 달성하지 못했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더니 지급률을 0.2%포인트 낮추는 데 그쳤다. 그것도 20년에 걸쳐서다. 이로 인해 40대 중반 이후 공무원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게 됐다. 2009년 0.2%포인트를 낮추고 바로 적용한 점에 비해 더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처음에 1.25%(새누리당 법률안)를 논의하다 1.65%를 마지노선으로 얘기하더니 결국에는 이보다 훨씬 못한 선에서 결정했다. 보험료 인상 목표(현재 7%)도 10%(새누리당 안)에서 9%로 낮아졌다.

 재정 절감 효과를 내려면 수지 균형이 필수다. 그러려면 ‘보험료 10%-지급률 1.65%(김용하 안)’가 돼야 하는데 이 근처에도 못 갔다. 이 때문에 김용하 안보다 70년 동안 최소한 108조원이 더 들어가게 생겼다. 공무원단체를 넣었을 때 이런 결과를 짐작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

 그동안 사사건건 연금 개혁의 뒷다리를 잡던 야당도 문제지만 졸속 합의한 새누리당의 책임이 더 크다. 엊그제 재·보궐선거에서 이겼다고 의기양양해 국민의 고통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29일 당초 논의에서 대폭 후퇴한 안이 검토되자 “반쪽 개혁, 누더기 개혁이 되어 국민 공분을 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안은 김 대표가 얘기한 반쪽 개혁도 못 된다. 향후 연금특위-법사위-본회의 과정에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야당은 더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이번 안으로 절감하는 돈으로 국민연금 지급률 인상이나 저소득층 사각지대 해소에 쓰자는 공무원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공무원단체가 자기 앞가림만 잘하면 되지 국민연금에 대해 콩 놔라 팥 놔라 나서는지 모를 일이다.

이 안대로 하면 다음 정권에서 또 개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개혁을 안 하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