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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지구촌 말 말 말 "고이즈미는 부시의 아시아 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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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05년에도 지구촌에는 '말'들이 많았다. 들어서 반가운 말도 있었고, 충격적이고 악의에 찬 말도 많았다. 촌철살인(寸鐵殺人) 같은 말도 있었지만 공허한 말도 많았다. 냉엄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국제관계에서 총성 없는 전쟁의 소리 없는 흔적은 세계 곳곳에 갖가지 자취를 남겼다. 쏟아진 말만큼이나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말말말'로 정리해 봤다.

◆ 부시, 시작은 좋았는데…=올해 국제 분야의 최고 핵심 인물은 누가 뭐래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었다. 처음엔 호기롭게 출발했다. 1월 20일 취임연설에서 그는 "세계 평화를 위한 최선의 희망은 세계 모든 지역에서 자유의 확산"이라고 선언했다. 재선에 성공한 그의 행보엔 거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리크게이트 등에서의 잇따른 실책이 발목을 잡았다. 이라크전과 관련,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해럴드 핀터는 "부시는 거짓말의 융단폭격으로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대로 가면 부시는 미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만약 의원내각제였다면 벌써 사임했어야 했다"고 일갈했다. "부시는 '저무는 미국'을 초래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뉴스위크도 "측근의 장막에 둘러싸인 부시는 마치 커다란 비눗방울 속에 갇힌 모습"이라며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고립된 대통령 신세가 돼버렸다"고 꼬집었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 제거는 정말 잘한 일" "이라크에서 무조건 철수란 없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한번 추락한 신뢰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 미.중 관계:견제와 포용 사이=2005년은 미국이란 수퍼파워에 중국이 대항세력으로 본격 자리매김한 원년으로 기록될 듯하다. 월스트리트 저널 아시아판은 "현재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컨게이지먼트(congagemant)'라는 한마디로 압축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경제적으로는 포용(engagement) 정책을 유지하면서 군사적으로는 봉쇄(containment) 정책을 강화해간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도 취임 직후 "중국은 앞으로 25년간 미국에 있어 최대의 도전이자 최고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시 대통령은 좀 더 노골적으로 공세를 폈다. 그는 11월 일본 교토(京都)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 정부는 자유와 개방을 요구하는 인민의 요구에 적극 응하라"며 "특히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35분 연설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78차례나 사용했다. 중국은 '중국 위협론'의 허실을 설명하기에 바빴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부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양국이 서로 윈-윈 하는 관계로 나아가자"며 예봉을 피했다.

◆ 중.일 관계: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과거사 왜곡 논란,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에서 동아시아 주도권 다툼까지 올해 내내 양국은 개와 고양이처럼 치고받느라 쉴 틈이 없었다.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은 "지금의 중.일 관계는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이라며 일본에 화살을 돌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중국의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시리즈를 반복, 중국을 더욱 열 받게 했다.

야당인 민주당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대표는 한 술 더 떴다. 그는 베이징(北京) 한복판에서 "이런 식이라면 일.중 간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말로만 우호를 외치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중국 외교부가 강력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정냉경열(政冷經熱)'이라지만, 정치의 냉랭함이 다른 모든 분야의 활기를 누르고도 남았던 한 해였다.

◆ 미.일 관계:푸들과 스쿠터=적의 적은 나의 동지라는 병법의 개론은 동북아에서도 그대로 통했다. 미국과 일본은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서구 언론은 고이즈미 총리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 빗대 '부시의 아시아 푸들'이라 불렀다.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신화매일전신은 "일본이 드디어 미국의 첩에서 애인으로 승격했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도 "고이즈미는 평화와 자유를 위한 굳건한 친구"라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정상회담 때는 1인용 스쿠터까지 선물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즉석에서 "앞으로 이걸 타고 출퇴근하겠다"고 약속했다. 언론은 이런 고이즈미 총리를 "일본 정치의 마지막 사무라이"라고 불렀다.

◆ 대재앙에서 선종까지=중국과 대만 관계도 부침을 거듭했다. 노벨 문학상 후보였던 리아오(李敖) 대만 입법위원은 베이징대 초청 연설에서 "공산당은 언젠가는 소멸한다"며 당당히 소신발언을 했다.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은 "중국은 암세포와 같은 존재"라고 쏘아붙였다. 하지만 중국은 대만 국민당과 이른바 '3차 국공합작'을 성사시키며 대만 정부를 압박해갔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도 떠오르는 뉴스 메이커였다. "이스라엘을 세계 지도에서 없애버리겠다" "이스라엘을 아예 유럽으로 옮겨야 한다" "부시 정부를 전범재판에 회부해야 마땅하다" "홀로코스트는 꾸며낸 얘기다" 등등. 그의 짧지만 자극적인 문장은 제목거리를 찾는 언론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부시 대통령도 "참 '해괴한 친구(odd guy)'로구먼"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2005년은 특히 대재앙이 끊이지 않았다. 지구상에서 지표면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인 몰디브의 정부 대변인은 "쓰나미로 국가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카트리나로 온통 폐허가 돼버린 미국 빌록시의 A J 할러웨이 시장은 "이건 우리들의 쓰나미, 미국판 쓰나미"라고 한탄했다. 지구 온난화도 심각성을 더했다. 로버트 메이 영국 왕립학술원장은 "지구 온난화의 폐해는 대량살상무기(WMD) 못지않게 위협적"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아직 세상에 희망은 남아있는 걸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4월 선종하면서 이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박신홍 기자

한반도 주변 어떤 말이 오갔나

◆ 한.미 관계

-"미국은 우로, 한국은 좌로 서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

-"현재 한.미 관계는 장의사가 관을 봉하기 직전의 상황"(데니스 핼핀 미 하원 전문위원)

-"북한이 동포라면 미국은 동맹. 한국 민주주의의 성장통으로 이해해 달라"(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

-"어떻습니까. 한.미 동맹이 잘 돼가고 있다고 봐도 괜찮겠습니까"(노무현 대통령, 한.미 정상회담 브리핑 도중)

◆ 한.일 관계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을 것. 지난날의 침략 정당화 시도는 묵인 못해"(노무현 대통령)

-"조국 위해 목숨 바친 자에게 경의 표하는 건 당연"(아소 다로 일본 외상)

-"한.일 우정의 해가 결국엔 한.중 연대의 해로 끝났다"(마이니치신문)

◆ 한.중 관계

-"지금의 양국 관계는 누가 뭐라 설명할 것 없이 아주 좋은 상태"(노무현 대통령)

-"양국 관계를 두 글자로 표현하면 단연 '협력'"(리빈 전 주한 중국대사)

◆ 북.중 관계

-"대안친선유리공장은 중.조 친선의 금자탑"(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북.중 관계는 바야흐로 최전성기를 맞고 있다"(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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