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바보 같은' 사랑 노래 두 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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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는 린다와 결혼한 이듬해인 1970년 비틀즈 해체를 선언하고 스코틀랜드 농장에 은거한다. 결혼 1년 전 런던에서 찍은 두 사람의 사진. 서울 대림 미술관에서 5월 25일까지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을 하고 있다. [사진 린다 매카트니]

"낙성대학교 진짜 있을 거 같지 않아?" "없어. 없다니까." "아니야. 강원도 어딘가에 있을 거야." 나는 있다에 걸었고 그는 없다에 걸었다. 서울로 가는 열차에서 우리는 내기를 했다. 내가 이기면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고, 지면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Red House Painters)의 CD를 주기로 했다. 군대 가기 며칠 전이었다.

사실 대한민국 어디에도 낙성대는 없다. 다른 친구에게 CD를 그에게 전해달라 부탁하고 입대했다. 몇 년 후 다시 만난 우리. "받지 못했어." CD는 중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돌고 돌아 '바보 같이' 다시 내 손에 들어왔다.

이 앨범에는 바보 같은 사랑 노래가 한 곡 있다. '어리석은' '바보 같은' '유치한'이란 뜻의 silly가 제목에 붙은 '실리 러브 송'(silly love songs)이다. 폴 매카트니의 곡을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가 다시 불렀다. 맞다 그 유명한 폴. 그가 비틀즈 해체 후 '윙스'(wings) 시절에 만든 밝고 신나는 노래를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의 마크 코즐렉이 아주 느리고 우울하게 바꿔버렸다. 비교해서 들어보면 같은 곡인지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다르다.

실리 러브 송 가사를 보면 폴의 음악관 혹은 억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유치한 사랑 노래는 지겹게 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지 않아요. 유치한 사랑 노래로 세상을 채우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뭐가 잘못이란 거죠. 저는 알고 싶어요. 그래서 또 부를 겁니다.'

1970년대 폴은 존 레논처럼 열정적으로 반전·반핵 운동에 뛰어들지도 않았고 혁명을 노래하지도 않았다.(후에 동물 보호와 지뢰 반대 운동에 참여한다.) 평론가들은 이런 둘을 비교했다. 폴은 빌보드지와의 인터뷰에서 "수년간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그는 너무 감상적인 사랑 노래만 해.'(중략) 이 곡은 그런 비난에 대한 대답이기도 합니다"라고 밝혔다.

한밤중 불꺼진 방에서 실리 러브 송 두 곡을 연달아 들었다. 폴이 느끼는 '바보 같은 사랑'과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가 느끼는 '바보 같은 사랑'은 하늘과 땅 차이다. 폴이 흥겨운 리듬을 타며 사랑해 사랑해를 노래한다면,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는 '숨 넘어 가기 직전'의 고백이다.

폴은 실리 러브 송을 1976년 4월 1일 만우절에 발표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는 물론이고 그의 윙스 시절을 대표하는 곡이 됐다.

폴 매카트니가 5월 2일 서울에서 공연을 한다.

※'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는 팬의 입장에서 쓴 대중음악 이야기입니다.

강남통신 김중기 기자 haahaha@joongang.co.kr

[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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