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광화문 곰' 얼굴 부조상 세워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1990년대까지 '광화문 곰'으로 불리며 증권가의 큰손으로 위력을 떨쳤던 고 고성일씨. 그의 청동부조상이 서울 수유동 통일교육원에 세워졌다.

고씨가 생전에 삼각산 자락 숲 속에 위치한 교육원 부지를 "후세를 위한 통일교육의 전당을 꾸미는데 써달라"며 선뜻 내놓은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가로 60㎝, 세로 80㎝ 크기의 부조상은 교육생이 가장 많이 모이는 교육관 2층에 자리잡았다. 하단에는 '겨레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이곳 통일교육원 부지 1만6878평을 흔쾌히 기부하신 송암(松巖) 고성일님의 높고 푸른 뜻을 기립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황해북도 연백이 고향으로 실향민인 그는 한국전쟁 이후 물들인 군복이 유행하자 서울에 수도염료상사를 열었다. 당시 20억원대에 이르는 염료시장을 독점하면서 그야말로 떼돈을 벌었다.

고씨는 '땅이 최고'라는 생각에 부동산 투자를 했다. 65년부터 서울과 경기도 과천 등지의 땅을 사들였다. 80년대 강남개발 붐이 불면서 토지보상비로만 당시 500억원이란 거액을 챙길 수 있었다. 이후 증권업에 손을 댔으며 그가 주식을 사고 파는데 따라 주가가 출렁이자 '곰 주가'라는 말까지 생겼다.

고씨가 교육원 부지를 내놓은 것은 87년 8월. 그는 정부가 통일교육원을 짓는다며 땅을 사려하자 "내가 그 돈을 받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느냐"며 당시 시가로 22억6000만원에 달했던 토지를 기부했다. 그는 "돈은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랬는데 이제 내가 국가와 조국통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정부 당국자는 전했다.

고씨의 쾌척으로 통일교육원은 19년간의 셋방살이에서 벗어나 현재의 자리로 옮길 수 있게 됐다. 올해도 2만4500여명이 거쳐가는 등 연평균 2만명이 다녀간다. 또 통일문화 페스티벌 등 각종 행사가 열리는 등 통일교육의 산실이 됐다.

부조상 건립은 지난해 7월 부임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고씨가 보인 훌륭한 기부문화를 확산시키자'고 제안해 이뤄졌다. 고씨가 작고한 1999년 이후 6년 만이다. 장남 경훈씨는 "아버님의 뜻이 남북 화해와 통일이란 더욱 큰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막식은 30일 열린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