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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안전이 투자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라…지속경영 가능성 '안전모'서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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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여수공장 직원들이 공장 주요 설비들에 대한 안전을 점검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각 사업본부 단위로 흩어져 있던 안전환경조직을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개편하고, 안전 진단을 전담하는 안전환경진단팀을 신설했다. [사진 LG화학]

세월호 참사는 기업 경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성장만을 보고 달리던 기업들이 안전의 가치를 되새기게 된 것이다. 실제로 안전경영을 실천에 옮기는 기업들이 늘고있다. 특히 석유화학과 건설 등 잠시만 소홀해도 대형참사로 연결될 수 있는 업종에서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덕목으로 자리잡았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12월 정수현 사장 등 임직원과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안전결의 선포식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중대재해 제로’ 등 무재해 건설현장 실현을 목표로 안전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GS건설의 임병용 사장도 지난해 9월 “GS건설만의 안전제일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며 ‘지속 가능한 GS건설 안전문화 만들기’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안전에 대한 투자를 강화한 두 기업은 모두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늘었다. 조업 현장에 대한 안전 투자가 기업 입장에서 불필요한 기업 비용을 줄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롯데, 회장실을 롯데월드타워로
그룹 총수가 "안전책임" 의지
 

안전에 관한 한 최고의 이슈 메이커는 지난달 100층을 돌파한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다. 롯데는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집무실, 그룹 컨트롤 타워인 정책본부를 잠실 롯데월드타워로 이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롯데그룹 총수가 롯데월드타워의 고층부를 집무실로 사용한다는 것은 “안전을 직접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높이 555m, 총 사업비 3조7000억원에 공사인원만 400만 명, 상시고용 인구가 2만 명가량 되는 제2롯데월드는 안전만큼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지상최대 과제라는 사실을 응집해 보여준다. 롯데그룹 한 고위 관계자는 “자나깨나 안전을 외치고 있다”며 “안전에 최선을 다해 한국을 대표하고 상징할 수 있는 건물을 짓겠다”고 말했다.

삼성중, 업계 첫 12대 수칙 제정
안지켜질 땐 작업 중지 제도도
와이파이·CCTV로 작업 감독
첨단기술이 사고 예방 주역으로
 

안전에 대한 투자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평판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건희 회장이 2013년 8월 울산공장 신축현장 물탱크 폭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경질했다. 삼성중공업이 올 1월 19일을 ‘안전의 날’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임직원이 안전 서약서를 쓰고 무재해 달성을 위한 결의를 다졌다. 안전의 날은 안전을 상징하는 숫자인 119에서 착안했다.

 삼성중공업은 2009년에도 조선업계 최초로 12대 안전수칙을 제정했다. 12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작업을 중지시켜 사고를 예방하는 ‘안전스톱제도’도 도입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무재해 947일을 기록했다.

 삼성 계열사 주요 사업장에서는 최근 급증하는 안전사고로 인한 인적·물적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 올해 초 에스원에서 개발한 ‘지능형 CCTV’ 안전 관리 솔루션 등을 각 사업장에 확대 적용하고 있다. 삼성SDI는 2013년부터 노후시설 교체, 안전시설 보강, 화학물질 공급·관리 시설 개선 등 세 가지 기조를 세우고,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안전 환경 개선 투자비용을 키웠다.

 

SK텔레콤의 LTE CCTV ‘포인트캠 LTE’는 CCTV가 촬영한 고화질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어 안전사고 예방에 특히 요긴하다. [사진 SK텔레콤]

한국산업안전공단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인한 손실은 연간 17조원이다. 자연 재난의 16배 수준이다. 전 산업 분야에서 하루 평균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안전공단은 인명사고가 동반되는 A급 사고 1건당 119억원에 해당하는 인적·물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각 기업에서는 안전교육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전사적 안전의식 고취를 위해 임직원은 물론 협력업체와 근로자들까지 안전교육 대상에 집어넣었다. 지난해 4174명이었던 교육 대상을 경영층 안전 리더십 및 협력업체 근로자 직무교육 등을 강화해 6200명으로 늘렸다. 내부 안전교육 규정에 따라 현장 인력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안전환경보건 교육도 협력업체 현장 인력까지 확대했다. 교육을 수료하지 않을 경우에는 현장투입이 금지될 정도다.

 대우건설은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계층별 전인교육, 안전교육 필수 학점 이수제 등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안전문화 캠페인을 전개해 의식구조를 개혁한다는 방침으로 안전직무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도 마련할 예정이다. 크레인 작업, 비계 설치 및 해체, 사다리 작업 등의 안전사고의 가능성이 높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 현장 공사책임자와 안전관리자에게 안전대책을 확인받아야 한다. ‘선 안전, 후 시공’의 원칙이다.

 삼성물산의 경우 임원부터 사무직 직원에 이르기까지 전 직원에 대한 안전교육 과정을 새롭게 신설했다. 또 대형현장은 현장 내에 안전체험장을 설치해 추락이나 감전, 전도 등 자주 일어나는 안전사고 유형을 직접 체험해 보는 ‘체험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사실 서구 기업들은 우리보다 안전경영에 대한 인식이 앞서 있다. 미국 석유회사인 ‘마라톤(Marathon Petroleum Company LP)’는 실시간으로 ‘가스 유출’ 여부를 점검할 수 있고, 특정 직원이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까지 파악해 조치한다. 예컨대 직원이 복도에 쓰러져 움직임이 없거나 비정상적으로 느리게 움직일 경우, 해당 직원에게 ‘자동 경보’를 보낸다. 그런데도 일정 시간 동안 답변이 없으면 ‘중앙 관제실’로 추가 경보를 보내고 해당 장소로 구조팀을 급파한다. 특히 가스 유출 정도나 사고 직원의 현황 같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구조팀에 전달해 도착 전에 상황을 파악한 뒤 적절한 구출 전략을 마련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똑똑한 응급 대응은 와이파이(WiFi) 기술과 무선 인프라 시설을 통해 기업 전체의 ‘안전 관리’ 역량을 혁신적으로 높인 결과다.

 액센츄어의 이준희 전무는 “마라톤처럼 기름·가스·화학물질을 다루는 기업에선 예고되지 않은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는 최고경영자(CEO)의 의지와 실천이야말로 기업의 존속을 가능케 하는 핵심 경쟁력의 하나”라며 “무엇보다 엄격한 규정과 원칙을 바탕으로 ‘표준’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안전 시설’에 투자해 기업의 보호막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우 기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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