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의사 밝힌 DJ "젊은이들 배타적 민족주의에 빠져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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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5층 집무실에서 월간중앙팀과 인터뷰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

"지금 한국정부가 북한의 인권을 등한시한다고 하는데, 어떤 점에서 보면 한국이 북한의 인권을 위해 가장 큰 기여를 했어요. 인권에는 근대화 이후 등장한 민주적 인권도 있지만 인간의 원초적 인권도 있습니다. 먹여살리는 것, 병든 사람 고치는 인권 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근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세계대회에서 우리 정부가 불참한 것을 묻는 질문에 "정부가 직접 나서게 되면 북한과의 모든 교류가 단절될 것"이라며 이같이 언급했다. 그는 특히 "정치적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모처럼 해온 인도적 인권도 망치는 일을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지금은 서로 사려깊게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월간중앙'의 김대중 전 대통령 인터뷰는 15일 오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5층에 자리잡은 김 전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1시간45분 동안 이뤄졌다. 김진용 월간중앙 대표와 허의도 편집장이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즘 남북연합을 깊이 생각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정리를 좀 해주시죠.

"알다시피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북쪽에서는 '연방제를 지금 하자. 미국과 똑같은 연방제를 하자'고 했어요. 외교.국방권을 중앙정부가 갖는 사실상 연방국가를 하자고 하는데, 나는 '그것은 비현실적 아니냐' '지금 남북 군사력을 당장 어떻게 합치고, 남북 외교를 어떻게 합칠 수 있느냐'고 반문했어요. 내가 그렇게 무리해서 하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북쪽에서 태도를 바꿔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표현했지만, 우리의 남북연합제를 받아들였어요. 이처럼 남북연합제는 남북 공동선언에서 이미 합의한 것이어서 하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앞으로 6자회담이 성공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는 평화회담으로 발전이 이루어지면 제1단계로 남북연합을 할 수 있지 않으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남북연합 단계의 구체적 구상이 있으시다면….

"남북연합제는 기본적으로 남북 양측이 현재대로 독립국가로서의 권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통일을 위한 노력을 점진적으로 해나가는 제도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북이 남북연합기구(사무국)를 두고 거기서 서로 정책적 협의라든가, 일상적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협의를 계속해 갈 수 있을 거예요. 결의 기구는 아니지만 합의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방향에서 시작해서 그 다음 단계인 남북연방 단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겁니다."

-남북연합제로 들어가는 전제로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합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왜 서울 방문을 하지 않았다고 보십니까.

"추측만 해볼 뿐이지 잘 모르겠어요. 그쪽에서도 설명이 없으니까. 자꾸 온다고 중국 가서도 이야기했는데도 안 오는 것을 보면 올 생각은 있는데 결정을 못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할 뿐입니다. 왜 못 오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2월 MBC와의 인터뷰에서 김 전 대통령께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초청할 경우 북한을 방문해 남북 평화를 위해 중재 역할을 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셨습니다만.

"평양에 갑니다. 북한에서도 와달라고 수차례 연락이 있었고, 또 노무현 대통령도 이번에 정식으로 다녀와 달라고 요청했고요. 양측 정부 입장이 다 정리됐고, 내 건강 문제가 제일 중요한데…. 하지만 특사나 공적 임무를 띠고 가면 자연히 대화의 폭이 좁아지고, 행동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어요. 그보다 같이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끼리 지금부터 민족의 앞날에 대해 서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미국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지, 일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북한의 국제적 비판에는 어떻게 대응할지, 6자회담 상설화 문제, 그리고 21세기 한민족이 평화적으로 협력하고 통일하는 과제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려 합니다."

-혹시 김 위원장에게 방북 친서를 받으셨습니까?

"구두 요청은 있었지만 친서를 받은 적은 없어요."

-요즘 새로 부임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와 미 국무부, 부시 대통령 등이 북한에 대해 '범죄정권' 등의 표현을 써가면서 비판적 강성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지난번 회담까지는 분위기가 상당히 괜찮았는데 또 미국 정부 지도자들이 북한에 대해 상당한 강공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방법은 분명합니다.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히 검증받아야 해요. 그리고 미국은 북한에 안전을 보장해 주고, 경제적 제재를 해제해 줘야 해요. 그래서 살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간단한 것인데 서로 상대를 불신하니 동시에 해야 합니다.

내가 볼 때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강경발언은 하지만, 네오콘 말처럼 미국이 군사작전을 할 힘은 없다고 생각해요. 미국은 이라크에서 발을 못 빼고 있고, 이란 문제도 있잖아요? 미국 국내에서도 지지받지 못할 겁니다. 특히 북한의 경우 중국과 러시아가 옆에 붙어 있어서 이라크와는 달라요. 군사작전을 하려고 하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우리도 미국과 협력하지만, 그것은 평화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지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쉽게 동의할 수 없어요. 미국으로서도 다른 길이 없어요. 북한에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미국은 마카오에서 북에 대한 금융제재를 하고 인권문제에 위폐.마약 문제까지 제기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 압박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이 6자회담을 깨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6자회담이 깨지지 않는 한 이런 식의 주고받는 협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이 북한을 설득할 일은 설득하고, 미국을 설득할 일은 설득하면서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민족공조와 한.미 공조의 선후를 따지며 갈등과 충돌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두 부분을 어떻게 조화시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야 할까요?

"그 두 가지는 병행해야 하고, 상호 보완해야 합니다. 먼저 한.미 공조는 남북 관계뿐 아니라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가 살아나가기 위해 우리의 안전을 보장받는 길로는 미국이 월등히 좋아요. 그에 대해서는 김정일 위원장도 2000년에 만났을 때 '우리 주위에는 러시아.중국.일본이 있어서 미국이 와 있는 것이 좋다. 통일 이후에도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민족공조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미래가 없지 않습니까? 21세기 세계화시대에 언제까지나 이 나라가 둘로 갈라져 대결할 것은 아니잖아요? 경제적으로 봐도 우리는 북한에 진출하고, 북한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야 합니다. 안보 면에서 보거나 경제발전 면에서 봐도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에서 민족공조를 해야 해요."

-새해에는 지방선거도 있고 각 당 대선 주자들도 바빠지고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께서는 향후 '한국호'를 이끌어갈 차기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우선 세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확보해 가고 발전의 길을 열어 가는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또 장차 통일을 위해 절대적으로 남북 관계를 해결할 능력을 가진 지도자를 꼭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지식정보화시대는 반드시 일자리가 늘고 서민들에게까지 이익이 간다는 보장이 없는데 어떻게 서민들의 살 길을 열어주고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복지를 증진하는 일을 병행할 수 있을지도 중요합니다."

말미에 김 전 대통령은 "이땅의 우리 젊은이들이 배타적 민족주의에 젖는 것은 안 된다. 포용적 민족주의로 세계에 진출해야 한다. 공산주의는 배격하지만 북한을 껴안고 통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김홍균.김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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