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엄마만 보면 짜증이 나요, 진짜 잘하고 싶은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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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스트레스 풀려고 사춘기로 퇴행

Q (후회하고도 돌아서면 화내는 딸) 30대 여성인 저는 어느 순간부터 엄마 목소리 톤과 말하는 스타일이 귀에 거슬려 엄마가 무슨 말만 하면 짜증이 납니다. 요즘은 엄마가 별말을 안 해도 짜증부터 냅니다. 엄마는 참 성실하고 저에게도 헌신하셔서 저도 엄마에게 잘하고 싶고 대화도 많이 하고 싶은데 대화만 하려고 하면 자꾸 짜증부터 내게 돼요. 엄마에게도 미안하고 또 짜증을 내고 나면 후회도 되면서 제 자신이 왜 이럴까 너무 싫어집니다. 저희 엄마는 목소리가 저음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톤이 똑같으세요. 말할 때 약간 더듬고 천천히 말씀하십니다. 예전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엄마 말투가 변해서 그 말투가 바보 같다 생각이 드는 건지 아니면 제 정신이 이상해진 건지 엄마에게 잘하고 싶고 친절하게 대화하고 싶은데 계속 엄마 말투와 목소리가 귀에 꽂히면 짜증부터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A (아직 엄마한테 짜증내는 윤 교수) 저도 엄마에게 짜증을 낼 때가 있습니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임을 우리 마음은 알고 있는데 우리 입은 엉뚱한 소리를 엄마에게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죠. 자녀의 엄마에 대한 짜증은 사춘기 때는 흔한 일이죠. 사춘기의 저항은 발달 과정상 심리적 독립을 이루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믿고, 엄마에게 저항하면서, 나도 엄마에게 분리된 존재라는, 독립 연습을 하는 셈인 것이죠. 내가 저항하고 미운 말 해도 엄마가 나를 끝까지 놓지 않을 것을 알기에 마음 편히 엄마에게 앙탈을 부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엄마와 나 사이에 선을 그어 나도 독립된 개체라는 인식을 만들고 동시에 내가 심하게 저항해도 항상 그 자리에서 날 사랑하는 엄마를 보면서 그 엄마의 따뜻함을 내 마음에 가져오게 됩니다. 엄마의 사랑을 내재화하는 것이죠. 엄마가 옆에 없어도 내 마음에 담긴 엄마의 따뜻함이 인생을 살다가 자괴감에 빠졌을 때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지나서도 엄마한테 투덜거리는 모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사춘기로 퇴행이 일어나는 것인데요. 어린아이로 돌아가 투정을 부리면서 어른으로서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엄마한테 푸는 셈이죠. 나이 들어서 투정은 독립 연습이 아니라 거꾸로 다시 엄마의 어린아이로 돌아가려는 행동입니다. 일시적 퇴행은 잠시 마음을 쉴 수 있게 해줍니다. 내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는 상태에서 엄마한테 슬쩍 의존해 엄마의 에너지를 받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일이 자주 있다 보면 나는 스트레스를 풀지만 엄마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오늘 사연처럼 결국은 엄마에게 미안해 나도 스트레스가 쌓이게 됩니다.

 사연 주신 분, 엄마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모 자식이라고 해서 서로의 스타일과 궁합이 다 맞을 리 없으니까요. 그러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핑계로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 편히 투정을 부리는 것입니다.

02 효도는 본능이 아닙니다, 그래서 힘들죠

Q 엄마도 힘든데 제가 응석만 부렸나 봅니다. 제가 사연을 보낸 솔직한 이유는 지난주 엄마가 암 의심 판정을 받으셨어요. 쉽지 않은 병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수술 가능 여부를 확인하려고 다음 주에 입원해 검사하기로 했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힘든지 모르고 투정만 부린 것이 너무 속상합니다. 어떻게 하면 효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A 부모님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는 경우 더 효도해야 합니다. 물론 ‘효도는 평생하는 일이지 부모님의 삶이 얼마 안 남았다고 더 효도를 한다는 것은 아니지 않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효도는 본능이 아닙니다. 효도란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죠. 도리란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길을 이야기합니다. 도리라는 것은 우리 몸에 에너지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식욕이 당기는 본능과는 다른 것이죠. 그래서 효도가 어렵습니다. 욕망 충족의 행동이 아닌 가치 지향적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배운 삶의 가치대로 살 수 있다면 세상에 아무 문제가 없겠죠. 그러나 아는 것과 행동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가치를 좇는다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수련이 필요합니다.

 앞의 사연에서 헌신적인 엄마한테 효도하고 싶은데도 엄마 목소리 톤이 싫어 짜증만 내게 된다고 하셨죠. 효도는 두 번째 문제이고 사는 데 힘든 스트레스를 엉뚱한 이유를 붙여 부모에게 푸는 것이 다반사인 것이 우리 자녀들입니다. 약간만 정신 줄을 놓고 있으면 괜히 부모와 언쟁을 하려는 우리를 발견하곤 합니다. 상사한테는 함부로 말했다간 불이익이 크니 나를 사랑하기에 만만한 부모한테 세상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죠. 또 부모는 심리적으로 거대한 존재이기에 부모에게 뭐라 하고 나면 내가 괜히 큰사람이 된 듯한 느낌도 무의식적으로 받게 되죠. 그러나 금방 후회하게 됩니다. 내게 제일 소중한 부모의 사랑에 상처를 냈기 때문입니다.

 짜증을 내고 나서라도 달려가 ‘잘못했어요’하고 자녀가 재롱부리면 또 좋아라 하시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아프셔서 또는 고령으로 그 삶이 제한적이라면 투덜거리기를 멈추어야 합니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땐 섭섭한 기억과 마음이 주로 생각나지만 신기할 정도로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그 순간부터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신 따뜻한 사랑의 기억만 머리에서 떠오르는 것이 우리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투덜거리다 떠나보내면 자녀 마음에 평생 한이 남게 될 수 있습니다.

03 부모와 함께하는 힐링, 시 읽기

Q 부모님 돌아가시고서 후회하는 자녀들이 많던데 저도 그럴 뻔했네요. 마음이 지친 엄마와 병실에서 함께할 만한 힐링법 어떤 것이 있을까요. 퇴원하고 나면 같이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려는데 입원 기간 중엔 무엇을 해야할지 잘 떠오르지 않네요.

A 함께 시 읽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시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시를 읽는 겁니다. 왜 우리는 자세한 설명보다 한 문장의 시에 더 감동할까요. 시는 메타포 위에 얹혀져 있습니다. 메타포는 은유라고 하죠. ‘원관념인 A는 보조관념인 B다’ 이런 형식으로 원관념은 숨기고 대상의 속성을 보조관념으로만 표현하는 것이죠. 이런 시적 소통이 논리적 소통보다 더 내 마음에 강한 여운을 남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인생은 여행이다.’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여기서 인생이 원관념이고, 여행이 보조관념이 되는 셈인데요. 쉽게 인생의 윤곽이 그려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막연하게 ‘인생이 무엇인지 설명해 봐’라는 질문을 받으면 머리에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지만 막상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여행이다’ 이렇게 메타포를 활용해서 이야기하면 인생의 한 단면이 쏙 이해됩니다. 그것은 여행이라는 단어가 인생이란 단어에 비해서 훨씬 시각적이며 손에 잡히기 때문이죠. 시작과 끝이 있고 많은 우연과 필연의 만남이 존재하는, 그런 여행 같은 특징이 인생에 존재한다는 거죠.

 그래서 시적 소통 즉, 메타포 커뮤니케이션은 마음 힐링을 위한 심리 치료에서도 활용됩니다. 논리적인 말보다 은유적인 시가 내 마음에 더 위로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꼭 복잡한 시를 읽을 필욘 없습니다. 대중 가요의 가사도 시죠. 가요를 틀어 놓고 천천히 가사를 함께 읽는 것도 좋습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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