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후 딸 낳은 엄마,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아기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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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로라와 형제들이 묻힌 무덤, 오로라 엄마 베르나르다 갈라르도]
[사진=오로라와 형제들이 묻힌 무덤, 오로라 엄마 베르나르다 갈라르도]

쓰레기 더미 속에 버려지는 신생아를 위한 살아온 칠레의 여성이 있다. 영국 BBC 방송은 26일(현지시간) 칠레 푸에트리토몬트의 ‘오로라 엄마’ 베르나르다 갈라르도(55)의 인생스토리를 보도했다. 그녀가 ‘오로라’의 엄마가 된 사연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4월 4일. 칠레 남쪽 푸에르토몬트시의 재활용 쓰레기 수거장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시신이 발견됐다. 검은 쓰레기 봉지 속에 담긴 채였다. 지역 신문에서 이 소식을 들은 갈라르도는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미 사망한 아이였지만 장례라도 치러주고 싶었다. 하지만 칠레 법은 자신의 자식이 아니면 매장 절차를 밟을 수 없었다. 갈라는 사망한 여아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는 갈라르도가 사망한 여자아이의 생물학적 어머니일 것이라고 의심했다. 칠레 역사상 사망한 아이를 입양하는 경우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판사는 그녀가 영아 유기에 대한 죄책감으로 입양 후 장례를 치르는 것이라 추측했다. 칠레에서 영아 유기는 5년 이상의 실형을 살아야 하는 범죄였다.

하지만 갈라르도는 아이에게 ‘오로라’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며 입양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오로라는 로마에서 새벽의 여신을 부르는 이름으로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 아이의 이름을 ‘오로라’로 지었다. 결국 판사는 오로라의 입양을 허가했고, 갈라르도는 새롭게 얻은 딸 오로라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오로라의 장례식에는 담당 판사, 의사, 간호사, 지역 언론 등 500여명이 참석해 오로라에 대한 시를 짓고 공연을 했다. 당시 오로라의 사연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하지만 오로라의 장례식 바로 다음날 또 다른 남자 아이가 쓰레기 더미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갈라르도는 충격을 받았고 다음날부터 도시의 모든 쓰레기장에다 “당신의 아이를 포기하지 말라”는 내용의 포스터를 붙이기 시작했다. 갈라르도는 가정 폭력이나 경제적 궁핍이 영아 유기의 원인이라고 보고 시민운동을 하고 교육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갈라르도의 인생도 굴곡이 많았다. 그녀의 할머니는 이탈리아의 수녀원 계단에 버려졌었다. 그녀도 기구한 운명이었다. 그녀는 16살 때 이웃의 성폭행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했지만 딸을 포기하지 않고 낳아 길렀다. 통계에 따르면 칠레에서는 매년 10명 가량의 영아유기가 발견된다. 비공식적으로 이 수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갈라르도는 이후 12년간 오로라 외에 마누엘, 빅터, 크리스토발 3명의 아이를 입양해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아이 마가리타를 입양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벌써 4명의 자식을 떠나 보냈고 이번이 5번째다. 갈라르도의 이야기는 칠레 감독 로드리고 세풀베다에 의해 영화로 제작돼 전세계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오로라와 형제들의 묘지는 칠레 시민들이 종종 꽃을 들고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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