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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피부 등 인체조직, 헌혈·장기기증 같은 공적관리체계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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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박창일 건양대 의료원장

혈액·장기·인체조직·조혈모세포·제대혈…. 모두 인체의 일부 기관이다. 살아 있는 사람 혹은 시신으로부터 기증된 이런 인체유래물은 타인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응급질환 치료에 도움을 준다. 인체유래물 중 인체조직(뼈·연골·인대·피부·양막·심장판막·혈관·신경·심낭 등)은 사후 기증할 수 있다. 한 명이 기증한 인체조직은 100명이 넘는 사람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어 의미가 크다.

그러나 현재 국내 인체조직 기증자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의료현장에서 사용하는 필요량의 74%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한 인체조직은 대체로 해당국에서 사용하고 남은 이식재를 수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안전성을 완전히 담보하기 어렵다. 그뿐 아니라 환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내 인체조직 기증 현황이 미비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인체조직 기증의 의미·가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다. 하지만 마땅히 ‘공공재’여야 할 인체조직에 대한 관리체계가 허술한 것도 큰 원인이다. 혈액을 관리하는 국가 시스템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1970년대 이전에는 매혈(피를 사고 팜)이 성행했고, 피가 필요한 환자는 비싼 값을 치르고 피를 구입했다.

이에 정부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공적관리시스템을 구축했고, 헌혈제도를 도입했다. 피는 더 이상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 아닌 생명 나눔의 선물이 됐다. 장기도 정부가 엄격히 관리하면서 기증·분배되고 있다.

인체조직도 혈액·장기처럼 인체유래물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인체조직과 관련한 법·제도가 미비했다. 시장경제 논리에 방치돼 왔다. 인체조직도 혈액처럼 기증→채취→가공→보관→분배 단계를 거친다. 그런데도 그간 이를 관리·감독하는 공적관리체계가 구축되지 않았다. 공공을 위한 생명 나눔 선물이어야 할 인체조직이 숭고한 의미를 잃고 하나의 ‘상품’이 된 채 팔려나갔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2013년 인체조직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 이 개정법에 따라 지난 6일 공모를 통해 국가 차원의 인체조직 기증 지원 기관으로 ‘한국인체조직기증원’이 선정됐다. 뒤늦게나마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인체조직 이식을 통한 조직 재건은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이번 인체조직 기증 지원 기관 지정을 필두로 안전한 이식재의 자급자족이 실현되고, 기증된 인체조직 이식재가 혈액·장기처럼 기증자의 생명 나눔 정신에 맞는 가격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물질만능주의와 생명경시 풍토로 사회가 각박하다. ‘공동체를 위해 기증’이라는 숭고한 생명 나눔 정신을 실천한 인체조직 기증자·유가족을 국가 차원에서 예우하는 방안도 모색해 아름다운 생명 나눔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박창일 건양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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