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속물적 일상 … 그래도'구원'은 있나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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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상의 모험
서동욱 지음, 민음사, 395쪽, 1만8000원.

우선 일러두고 싶은 점 - 발랄한 느낌의 책 제목을 최대한 무겁게 받아들일 것. 저자가 화두로 삼은 소통.패션.웰빙.잠.글쓰기 등은 현대 일상의 단편이다. 하지만 신간의 관심은 이들의 문화사적 분석도, 한동안 유행했던 일상문화연구도 아니다. 정평한 들뢰즈 연구자인 저자는 "일상이 비진리의 자리"라는 하이데거의 명제로부터 출발한다. 일상을 균열시키는 모험과 일상 안에 미리 있는 구원을 탐색하는 것. 요컨대 일상성과 주체의 존재론을 따지는 원대한 작업이 신간을 관통하고 있다.

예컨대 웰빙(Well-Being). 유통가의 최신 모토로서의 웰빙은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다. 특히 개인의 몸과 정신의 건강이 최대 관심사다. 그런데 과연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웰빙의 빙(Being)이 이미 존재(Being)에 대한 견해를 내포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먹는다는 것은 결국 먹는 존재의 본성에 대한 물음일 수밖에 없다는 것.

'먹음'의 존재론적 의미를 찾아 저자는 프로이트.데리다.하이데거로부터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유의 여정 끝에 "잘 존재(웰빙)하기 위해선 존재의 타자, 곧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면 싱겁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당연한 윤리를 우리는 일상 속에서 얼마나 잊고 사는가.

신간은 최근 '일상의 미시사' 가 인기를 끌고 있는 데 힘입어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깊이 있는 철학의 장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저자는 유수한 철학 담론을 씨줄로, 사르트르.도스토예프스키 등의 문학작품을 날줄로 삼아 주체와 타자, 구원과 실존의 문제를 파고든다. 자연 읽기 어렵다. 일상이니 모험이니 하는 단어에 매혹돼 책을 집었다간 "역시 철학은 어려워"하고 고개를 저을지 모른다. 그러나 카프카의 말을 빌자면 "우리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구원은 거저 오지 않는 법이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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